올 상반기 무더기 하한가 사태에 악용됐던 차액결제거래(CFD)가 3개월간의 거래중단을 마치고 9월부터 재개를 앞두고 있다. 거래중단 전 CFD를 취급하던 국내증권사 대부분도 재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의 CFD 관련 규제 강화로 시장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여전히 CFD 서비스가 증권사들의 먹거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장외파생상품의 일종인 CFD 특성상 양도세 회피, 지분율 공시 회피 목적으로 대주주·자산가 사이에서 여전히 적지않은 수요가 있을 것이란 판단이 증권가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개 중 9개가 CFD서비스 재개 확정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초 CFD 서비스를 제공하던 국내 증권사 13개사 가운데 9개사가 CFD 재개를 확정했다. 이중에서 재개시점을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는 9월 1일로 확정한 곳은 NH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교보증권이다.
신한투자증권과 DB금융투자도 9월 중 재개를 목표로 삼고 있다. KB증권과 하나증권, 유진투자증권은 재개를 확정했지만 구체적인 시점을 못박지는 않았다.
이밖에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은 재개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상태이고, SK증권은 완전 중단을 확정했다.
CFD 서비스를 시작하는 증권사들은 강화한 규정에 맞춰 시스템을 개편하고 있다. 지난 4월 라덕연 등 주가조작 세력에 의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발생한 이후 금융당국이 장외파생상품인 CFD 관련 규정을 대폭 손질하면서다.
우선 장외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한 개인전문투자자의 문턱이 대폭 높아졌다. 기존에는 월말평균잔고가 최근 5년 내 1년 이상 5000만원을 넘으면 CFD 거래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잔고가 3억원을 웃돌아야 한다.
증권사들의 확인 절차도 강화됐다. 개인전문투자자 지정 시 대면 또는 영상통화를 반드시 실시해야 하며, 2년마다 개인전문투자자 자격요건을 재확인해야 한다.
최소증거금률 40%.. 메리츠·키움 소급적용은 안해
아울러 최소 증거금률(40%)을 상시 적용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021년 10월 미국 헤지펀드 아케고스 사태가 발생하자 행정지도를 통해 CFD 증거금률을 10%에서 40%로 높인 바 있다. 이 행정지도는 1년 주기로 연장됐지만 이제부터는 의무다.
다만, 증거금률 40% 적용 대상은 증권사별로 다르다. 금융감독당국에서 첫 행정지도가 내려졌던 2021년 10월 전에 진입한 포지션에는 해당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을 내리면서다.
이에 따라 당장 9월 1일부터 CFD 서비스를 재개하기로 한 메리츠증권과 키움증권은 2021년 10월 이전 계좌에 대해서는 증거금률 기준 상향을 소급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교보증권, NH투자증권은 이를 소급 적용해 모든 계좌에 대해 종목 증거금률 40%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급적용을 할 경우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추가로 현금을 입금하거나 반대매매가 발생하고 관련 민원도 많아질 수 있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이전과 달리 CFD와 관련한 적극적인 마케팅 행위도 하기 어렵다. 감독당국이 개인전문투자자 지정 신청 권유 자체를 불건전영업행위로 규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독당국이 CFD 현장검사 종료 이후 투자자 보호가 미흡한 영업행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까다로워진 규제.. 그럼에도 다시 재개 이유는
이처럼 관련 규정이 대폭 엄격해지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선 CFD 시장이 사실상 폐지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실제로 개인전문투자자 조건 중 하나인 월말평균잔고 기준이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6배 높아지면서 CFD를 할 수 있는 개인전문투자자 규모는 5분의 1로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예상과 달리 대부분 증권사들이 CFD서비스 재개로 가닥을 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대주주와 자산가 사이에서 여전히 CFD에 대한 높은 수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강화한 규정에 따라 기존과 달리 앞으로는 CFD 투자주체 표기를 개인투자자로 명확하게 해야하지만, 장외파생상품 특성상 개인 대신 증권사가 기초자산의 소유권을 갖게 되는 점은 여전하다.
따라서 CFD를 활용할 경우 대주주 양도세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현행 세법상 상장주식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하거나 주식 지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한 투자자는 대주주 요건에 해당돼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0~25%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대주주가 CFD 등 장외파생상품을 활용하면 기초주식에 대한 소유 주체가 드러나지 않아 양도세를 낼 의무가 없다.
또한 5%룰에서도 자유롭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자는 보유비율, 보유목적이 바뀌었을 때 해당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CFD 거래에서는 지분 보유 주체가 증권사로 잡히기 때문에 대량보유 보고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판매단계부터 사후관리를 총망라해 자본시장법 상 규율체계를 당국이 원하는 수준까지 격상해야 하므로 인프라 투자 등이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세제 등 편익이 분명한 상품이기에 사업을 지속하려는 증권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외파생상품 특성상 법적 소유권은 투자자가 아닌 증권사에 있기 때문에 대주주나 자산가들에 유리한 구조"라며 "중장기적으로 과세 회피 목적 거래 등을 겨냥해 세제 등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