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연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주주보호원칙을 넣는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비상장사까지 규율하는 상법개정을 하는 것보단 상장사만 규율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부작용을 줄이는 측면에서 더 낫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합병과 물적문할 시 주주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세부 방안도 내놨다.
금융위원회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반주주이익 보호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설명에는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이 참석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부 내에서 많은 논의를 거쳐 자본시장법 개정 대안을 내놨다"며 "상장법인이 합병‧분할, 주식의 포괄적 이전‧교환, 주요 영업의 양수도 등 자본시장법 제 165조의 4의 규정에 따른 행위를 할 경우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주주보호원칙을 세우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합병‧분할 등 재무적 거래 시에만 주주보호원칙
금융위‧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내놓은 안은 상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넣는 것보단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주주보호원칙을 넣자는 것이 골자다.
자본시장법(제165조의4)에 규정한 △합병 △중요한 영업‧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분할합병 등의 행위를 하면 이사회가 합병 등의 목적,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을 작성‧공시하는 등 주주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가령 비계열사뿐만 아니라 계열사 간 합병에서도 가액 산정기준을 전면 폐지하고 무조건 외부평가기관에 의한 평가 및 공시를 의무화했다. 또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면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공모신주 중 20% 범위내에서 우선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주주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행동규범도 구체화했다.
김병환 위원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해 상법 개정으로 인해 모든 다수의 회사, 상장법인이 아닌 비상장, 중소‧중견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적용 대상 행위가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4에서 규정하는 4가지 행위로 한정해 상법 개정에 따른 일상적 경영활동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기본법인 상법개정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담을 경우 이사회의 경영활동 위축, 면책불가, 비상장사까지 적용하는 등 부작용이 있지만 자본시장법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포괄적' 규정 대신 '핀셋' 규정 내놓은 금융당국
금융당국이 내놓은 이번 주주보호원칙은 기존 상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포괄적 규정과는 달리, 합병‧분할 등 특정 상황에서만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핀셋 규정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기존 상법 개정안보다 후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병환 위원장은 "자본시장에서 일반주주 보호가 미흡했다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 재무적 거래"라며 "재무적 거래 부분을 개정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가 주주보호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문을 포함한 만큼 지금 논의되는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에 대한 취지도 상당 부분 반영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회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도 같이 보호돼야 한다는 큰 틀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울러 (상법개정을 통한) 규제가 효과도 있겠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의도한 규제효과를 달성하는데 있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합병, 분할 등 재무적거래가 아닌 고려아연 사례와 같이 차입 후 자기주식 공개매수 뒤 저가에 유상증자를 하는 등 소액주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포괄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고려아연 케이스는 차입을 해서 자사주를 사고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한편으론 회사도 손실을 입은 것"이라며 "소액주주들의 반발 등의 유상증자 철회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지만 회사에 손실을 입히는 만큼 이는 현행 상법상으로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합병, 분할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닌 포괄적 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자본시장법에 넣는 대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환 위원장은 이와관련 "과거 증권거래법 시절 상장법인에 대한 지배구조 관련 조항이 증권거래법에 담겨있었는데 자본시장법이 만들어지면서 지배구조 부분이 상법에 들어가 현재 법체계가 됐다"며 "만약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현행 자본시장법에 넣을 경우 이 체계를 다시 흔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금융당국의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에 대해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기업 활동을 다 규율할 수 없기 때문에 포괄적 규정인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넣자는 것이 상법개정 논의의 골자였다"며 "특정 재무적 거래만 놓고 주주보호원칙을 세우다면 공개매수를 위해 주가를 누르고 주주환원을 하지 않고 고려아연처럼 자사주 사놓고 유상증자하는 등의 사례는 막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상법 개정이 어렵다면 자본시장법에라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넣어 포괄적으로 주주보호뿐만 아니라 주주이익을 증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금감원 연달아 자본시장법 개정 강조, 왜?
앞서 지난 2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상법개정 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주주보호원칙을 세우는 데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다시 한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설명했다. 금융당국 두 수장이 연이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더 적합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올해 안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강조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야당에서만 여러 개의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올라온 만큼 연내에 야당 단독으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정무위에 제출하면 논의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또 국회와 논의가 될 것"이라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여당과 협의해 의원입법으로 이번 주 빠른 시일 내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야당은 금융당국이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본시장법 핀셋 개정으로 특정 규제만으로 가능하다면 굳이 상법을 개정하지 않고 양보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법 개정 가능성도 열어 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