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선전 메이크블록 본사 로비에 전시된 로봇들의 모습 [사진=이세정 기자] |
밀릴 듯 말 듯 몸 싸움이 치열하다. 지루한 힘겨루기 끝에 한 팀이 공을 채간다. 드디어 경기 종료 직전 골을 넣자 함성이 울려 퍼진다. 진 팀은 결과를 믿기 힘든 듯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최근 중국 선전에 위치한 조립형 로봇기업인 '메이크블록' 본사를 방문했을 때 본 장난감 로봇간 축구경기 모습이다. 단순한 장난감 로봇간 대결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열광했다. 그 배경을 살펴보니 이유는 메이크블록 로봇의 속성에 있었다.
메이크블록 로봇은 부품을 조립한 뒤 코딩까지 직접 해야 작동한다. 로봇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사람이 어떻게 프로그래밍 했는지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로봇의 승부는 곧 사람의 승부인 셈이다.
메이크블록은 단순히 작동만 하는 로봇이 아니라 소비자가 로봇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감성 포인트를 공략했다. 그 결과 메이크블록이 주관하는 로봇축구대회는 1000여개 팀이 참여할 정도로 흥행이며, 회사 매출은 창업 5년만에 35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선전에서 만난 또다른 스타트업 '제1반응'도 마찬가지다.
제1반응은 심장 충격기 등 응급구조 장비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응급구조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장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에서 창업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이런 창업 아이디어는 불행하게도 친구와의 사별에서 시작됐다. 창업자의 한 친구가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 도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것. 사고현장에 응급구조 장비가 없어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본 뒤 창업을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중국인들 마음을 흔들었다. 나 또는 내 지인 중 누구라도 비슷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 앱의 필요성이 중국인들 마음을 자극시켰다.
제1반응은 창립 3년 만에 중국내 각종 서비스 대상을 휩쓸었고, 텐센트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에 앱을 탑재시켰다.
▲ 중국 선전 테크코드 사무실에서 입주기업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이세정 기자] |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리던 중국은 2014년 뉴노멀(New normal)을 선언하면서 중속 성장에 들어섰다. 게다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종 개혁을 내세우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체는 좀더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국가로 설비를 이전하고 있고,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던 판매기업도 예전만 못하다며 볼멘 소리를 낸다.
하지만 변화가 있으면 그에 맞는 기회도 있는 법. 중국 스타트업들이 중국인 감성을 자극하는 사업 아이템으로 승부를 보고 있듯, 단순한 의식주 아이템 판매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면 승산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 분석이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소득 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지갑을 여는 중국인들이 많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교육, 오락 등 서비스분야가 대표적이다.
또 한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중국 로컬기업과의 경쟁이다. ICT 분야는 반도체 등 일부를 빼곤 중국기업이 한국보다 더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선전만 해도 지난 2015년부터 창업 거품이 사라지면서 카피캣이 종적을 감추고 혁신을 이룬 기업만 생존하고 있다. 과거 짝퉁 제품이나 만들던 선전은 사라졌다.
'중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이상 낮춰볼 상황이 아니다. 철저한 시장 전략을 구사하고 혁신하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땅임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