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결국 해를 넘긴다. 양사가 지난해 말부터 공개적으로 추진한 합병은 1년이 지나도록 양측 주주사들의 의견이 엇갈리며 지지부진했고, 최근에는 주주사들이 갑자기 넷플릭스와 협력을 강화하는 등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물론 티빙의 모회사 CJ ENM이 지난달 웨이브 운영사 콘텐츠웨이브의 전환사채(CB) 상환에 1000억원을 지원하고 피를 섞으면서 합병 추진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다는 평가다.
그런데 이 '혈맹'은 콘텐츠웨이브가 전환사채 2500억원을 신주 발행하고, SK스퀘어(1500억원)와 CJ ENM(1000억원)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이자까지 포함한 상환 금액은 24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사가 힘을 모아 빚을 갚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합병법인이 국내 OTT 시장 공략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제대로 하려면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투자금 회수가 목적인 재무적 투자자(FI)가 전략적 투자자(SI)로 전환했다는 점은 긍정적 측면으로 해석된다. 단기적 성과 극대화를 추진하는 것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양측에 붙었던 주주들의 대열 이탈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SBS가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KBS·MBC·SBS 등 지상파3사는 콘텐츠웨이브의 지분을 각각 20% 가까이 나눠 갖고 있다.
넷플릭스와 SBS가 체결한 파트너십은 △SBS 신작 및 기존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국내 넷플릭스 회원들에게 제공 △SBS 신작 드라마 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SBS는 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하고, 넷플릭스는 자사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티빙 지분 10.66% 정도를 보유한 네이버의 경우 지난달 26일부터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통해 국내 IT 플랫폼 멤버십 서비스 중 최초로 넷플릭스 이용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넷플릭스의 화제작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일인 지난 26일 자사 1784 사옥 창문에 양사 제휴를 의미하는 '네넷'이라는 글자를 연출하기도 했다. KT스튜디오지니(티빙 지분 13.54% 보유)의 모회사 KT도 올 하반기부터 양사 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들의 변심은 국내 OTT의 무게추가 넷플릭스와 같은 외국 플랫폼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OTT의 범위를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까지 확대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도가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0일 발표한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OTT 가운데 가장 높은 이용률을 차지한 곳은 유튜브로 72.7%에 달했고, 넷플릭스는 36.0% 수준이었다. 티빙(14.8%)과 웨이브(6.9%)는 쿠팡플레이(8.5%), 디즈니플러스(5.4%)에도 쫓기는 신세다.
사정이 이처럼 점차 복잡해지고 있으나 CJ ENM과 SK스퀘어는 티빙과 웨이브의 단계적 통합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향후 기업결합심사 등을 거쳐 CJ ENM으로 기업결합을 추진하고 주주 동의를 기반으로 남은 통합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티빙-웨이브 통합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OTT를 출범시켜 이용자에게 차별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국내 OTT 산업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