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인 555m(123층)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에 국내 주거시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쓸 주거용 오피스텔이 곧 선을 보입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라고 이름 붙인 오피스텔인데요. 내년 초 분양을 앞두고 최근 사전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일반에 모습을 살짝 드러냈습니다.
이 오피스텔은 공급면적 기준 3.3㎡당 평균 분양가가 7500만~8000만원에 책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층과 면적, 조망에 따라 최고가는 3.3㎡당 1억3000만원대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게 분양대행사 측 설명입니다. 아직 분양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 채 값이 최고 300억~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오피스텔은 '후분양' 방식입니다. 국내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일반적인 주거상품들처럼 착공에 맞춰 입주자를 모집하는 '선분양' 방식이 아니라, 건물이 다 지어진 뒤 입주자를 찾는 방식이죠. 일반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이 때문에 애초 계획보다 분양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상품을 비싸게 팔 수록 이문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사업주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죠. 무슨 얘긴지 그 배경을 살펴 볼까요?
▲ 롯데월드 타워 투시도(자료: 롯데건설) |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42~71층에 들어서는 공급면적 209~1238㎡ 223실 규모 오피스텔입니다. 이와 별도로 108~114층에 들어설 743~1027㎡의 초고급 사무공간 '프리미어 7'도 함께 내년 1~3월께부터 분양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시점인 지난 7일 서울시에 타워동을 포함한 전체 제2롯데월드에 대한 사용승인을 신청했는데요. 심사에는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에 없었던 초고층 빌딩이라 안전·교통 등 제반 사항에 대한 확인 작업이 길어지면 승인 확정은 더뎌질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롯데월드타워가 특이한 점은 건물을 다 지은 뒤(준공) 사용승인을 받아야 사무실이나 오피스텔 등을 분양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점입니다. 사업 허가 과정에 특혜 논란이 있었고 안전에 대한 우려도 많았던 만큼 서울시는 선분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외적으로 시행사인 롯데물산과 시공사 롯데건설로 하여금 건물을 완전히 짓고 난 뒤 분양토록 한 것이죠.
이 때문에 롯데는 자체 자금조달을 통해 공사비를 대 건물을 우선 짓고, 수익은 후분양으로 나중에 회수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선분양이 이뤄져 분양 계약자가 많아졌다면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로서는 민원 처리가 훨씬 복잡해졌겠죠.
▲ 자료: 지우알엔씨 |
이런 후분양 때문에 롯데는 적지 않은 이익 감소를 감수하게 됐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우선 자금 조달 비용입니다. 총 4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중 일부를 초고급 오피스텔과 사무실의 분양 수익금으로 댈 수 있었다면 그만큼 금융비용을 아낄 수 있었죠.
분양가를 3.3㎡ 당 7000만원대 후반으로 잡을 경우 시그니엘 오피스텔의 총 분양수익은 2조원 수준입니다. 이 오피스텔을 미리 분양했다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금융비용(이자) 없이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올 연말로 접어들면서 부동산 경기가 꺾인 것도 분양을 일찍 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반드시 사용승인 이후라야 분양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다면 분양 열기가 뜨거웠던 작년부터 올 가을 사이 분양을 할 수 있었죠. 그렇지만 롯데는 이 호시절을 눈 뜨고 그냥 보낼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사전 분양을 시작한 지금은 부동산 시장에 바짝 '냉기'가 든 시점입니다. 국내 가계부채 과다 및 분양과열 우려로 각종 규제책이 나온 시점이고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금리 상승기류, 대내외적 정치 변수까지 불거진 상황이죠. 실제 분양 계약자를 모아야할 내년에는 더욱 전망이 어둡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열린 '시그니엘' 투자 설명회에 참석한 압구정동 소재 M공인 관계자는 이렇게 봤습니다.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가 분양에 우호적이지는 않다. 다만 워낙 고가의 특수한 프리미엄 오피스텔이어서 수요층도 일반적인 시장 분위기를 크게 의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 시그니엘 레지던스 복층형 실내 거실 이미지(자료: 롯데건설) |
이 같은 시장 기류의 변화는 롯데물산이 종전 계획보다 분양가를 낮춰 잡은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요. 올 초만 해도 이 오피스텔은 평균 분양가가 3.3㎡당 9000만~1억원선에 분양될 것이라으로 얘기가 흘러나왔었죠. 이를 감안하면 현재 예상되는 분양가격은 당초 계획보다 15~20% 낮춰진 것입니다.
오피스텔 분양가격이 낮아진 데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조기 활성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롯데월드타워는 국내 최고층이라는 상징성 속에 인허가 과정의 논란과 시공 기간 동안 겪은 여러 안전 문제 등으로 주목을 받았죠. 이 기간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과 비리 수사도 겪었고요. 탈도 많았던 만큼 준공 이후엔 최대한 빨리 자리잡도록 하라는 게 신 회장 지시라고 합니다.
이런 롯데 수뇌부의 의중 때문에 분양가 상향을 최대한 자제하게 됐다는 게 분양대행사인 지우알엔씨 측 설명입니다. 일찌감치 분양 계약을 완료하자는 거죠. 신 회장은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최상층 복층형(70~71층) 펜트하우스를 분양 받을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프리미어 7 최상층 사무실에는 신 총괄회장이 입주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그니엘은 워낙 고가 상품인 만큼 국내에서만 수요를 충당하기가 어려운 상품인데요. 롯데물산과 롯데건설은 이 때문에 분양 대행사로 국내업체 지우알엔씨와 도우씨앤디뿐만 아니라 외국계 부동산 업체인 ERA와 존스랑라살(JLL)까지 끌어들여 마케팅 진용을 갖췄습니다.
특히 ERA와 JLL을 통해 한국 투자에 관심이 많은 중국계 부호들을 유치할 생각인데요. 최근 중국 자산가들의 우리나라 투자 유입이 미사일방어체체(사드, THAAD) 설치 논란과 함께 주춤한 점도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반한 감정'이 분양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분양 여건이 악화된 건 불과 얼마 안된 일입니다. 단 몇개월 전만해도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아파트나 오피스텔 건물들처럼 선분양만 가능했다면 말이죠. 롯데로서는 뼈저리게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 시그니엘 레시던스 개요(자료: 지우알엔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