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인근을 복합도시화해 한강 르네상스를 만들겠다'(2007년)→'여의도와 용산 일대를 대규모 통합 개발하겠다'(2018년)→'용산역 정비창에 주택 8000가구와 상업‧업무시설 등을 조성하겠다'(2020년)
애초에 기대했던 '랜드마크 도시' 수준의 화려한 개발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세 번째로 나온 용산 개발안은 임대주택을 포함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뼈대로 했다.
그럼에도 15년여간 공터로 남아 있던 서울 한복판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모습이다. 시장에선 2년 전 여의도‧용산 통합개발(용산 마스터플랜) 발표 때처럼 일대 집값이 크게 뛸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강 르네상스→8000가구 주택촌?
국토교통부는 지난 6일 '수도권 주택 공급대책' 중 하나로 용산역 정비창 부지(약 51만㎡)를 개발해 8000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용산역 정비창 부지는 한국철도(코레일)가 보유한 땅으로 지난 2006년 부채 감축을 위해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7년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15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을 세우고 서부이촌동 일대(56만6800㎡)까지 묶어 최고급 주택, 문화시설 등을 조성해 '한강 르네상스'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난 등으로 2013년 사업이 백지화됐다. 한국철도와 민간 개발사는 사업 좌초의 책임을 묻는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8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연 용산 마스터플랜 계획을 밝히면서 사업이 다시 진행되는가 싶었으나, 일대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한 달 만에 전면 보류해 놓은 상태다.
지난해엔 코레일이 긴 소송전 끝에 이기면서 다시 개발 기대감이 되살아났고 최근 정부가 세 번째 청사진을 내놓으며 개발이 확실시됐다.
이번 개발안은 8000가구의 '미니 신도시급' 주택 공급이 골자다. 이 중 절반은 공공주택, 나머지 절반은 민간에 매각해 분양가 상한제 주택으로 공급한다.
시장에서는 기대감이 확 꺾인 모습이다. 도시 경쟁력을 강화할 만한 상업‧업무시설이나 고급 건축물보다 '주택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8000가구 중 공공임대가 2400가구로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임대를 포함한 공공주택은 공적 기능이 높은 중소형 주택이 다수를 차지할 전망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0년 넘게 멈췄던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대규모 업무시설, 고급 주거지 등을 조성하려했던 과거 국제업무지구 개발안에 비해선 개발의 위상이나 파워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 그래도 개발 기대감…집값 꿈틀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지만, 일대 집값은 상승세에 접어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발표는 용산정비창 이용계획 중 30%를 차지하는 주거 부문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70%는 상업‧업무시설인 만큼 아직 기대감이 꺼지지 않았다.
당초 국제업무지구로 계획할 때 넣으려했던 오피스‧호텔‧쇼핑몰 등 상업‧업무시설과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베션‧전시회) 등 국제 전시시설도 들어온다.
하동수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이번 사업은 단순히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주택지구 개발이 아니라 도시개발사업"이라고 강조하며 "국제업무기준을 서울에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 기능을 포함하는 방안으로 서울시가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또 인근에 동부이촌동과 한남뉴타운의 정비사업,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일부 주거지 조성, 공원 조성 등의 개발 호재가 밀집돼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벌써부터 투자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부이촌동 시범1차 아파트 인근 A부동산 관계자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집주인들이 매물을 싹 거둬들였다"며 "상가는 몇 개 나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아파트는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대림아파트 인근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매물이 몇 건 있긴 한데 매수 문의가 워낙 많아 금방 계약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테니 빨리 움직이는게 좋다"고 부추기기도 했다.
2년 전 분위기와 비슷한 모습이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스터플랜 발언 이후 일대 주택 보유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올리면서 불과 한 달 새 집값은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2018년 용산구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6월 9억6250만원, 7월 9억6750만원으로 한 달 동안 500만원(0.52%)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박 시장의 마스터플랜 발언 이후 8월은 9억9250만원으로 2500만원(2.59%) 급등했다. 한달 만에 전면 보류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9월엔 용산구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겼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개발이 되면 유동인구 증가, 주거환경 개선, 상권 활성화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시장이 침체했을 때 발표한 것 같은데 경기가 안정되면 집값도 금방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