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집을 사는 과정에서 자주 피로감을 느꼈다. 집 보러 다닐 때도, 계약할 때도, 진금을 치를 때도 부동산 중개업자와 집주인(매도자)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계약 체결 이후엔 법무대리인을 만나 소유권 이전 등기 등을 진행했다. A씨는 대부분의 금융거래를 비대면으로 하고 최근엔 출퇴근이나 회의 등도 비대면(재택)으로 하는데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대면으로만 이뤄지는 점이 의아했다.
현재 국내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대면'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집값이 수억원대 이상인 만큼 대면 거래를 선호하고 중개업자를 통한 거래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시 공인중개사, 매수자와 매도자 혹은 분양 관계자 등과의 잦은 대면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IT기술 발달,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비대면 방식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동산 거래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집을 사고 팔 때(또는 임대·임차) 거래 당사자 또는 중개사와의 만남을 줄일 수 있을까.
◇ 중개인 최소 3번 대면에 매물 확인도 수차례
주택 매매의 경우 매물 확인, 계약 체결, 잔금 납부 등 최소 세 번은 중개인 또는 당사자와 대면해야 한다.
매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실이 아닌 경우 집주인 또는 세입자 허락 하에 중개사와 함께 집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때까지 여러 매물을 보러 다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중개사와의 만남이 잦고 여러 집을 들르게 된다.
계약할 때는 중개업자가 계약서를 작성해 놓으면 매도인과 매수자가 중개업소에 방문해 서로 본인확인을 하고 계약서를 확인한 뒤 서명을 해야 한다. 집값을 일시불로 납부한다면 계약 당일 모든 절차가 끝나는 셈이지만 보통은 계약일에 계약금을 내고 잔금 납부는 나중에 한다.
매수자는 잔금 납부일에 또다시 중개업자와 매도자를 만나 잔금을 치르고 부동산 거래 신고 필증, 등기권리증, 인감증명서 등을 받아야 한다. 이후 취득세 납부, 등기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절차는 법무대리인에게 위임하기도 한다.
전월세의 경우엔 매물 확인, 계약 체결를 거친 후 입주일에 주택 내부 확인 등을 위해 집주인과 중개업자를 대면하곤 한다.
이런 거래 방식은 기존 주택 매입뿐만 아니라 아파트 분양 시에도 마찬가지다.
견본주택에서 내부 평형을 확인하고 청약에 당첨돼도 계약을 하기 위해선 견본주택에 다시 방문해야 하는 식이다. 이에 신혼집을 마련 중인 박 모씨(34)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당첨자 예비번호를 받아서 견본주택에 가서 분양 관계자에게 설명을 들었고 필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해서 또 한 번 방문했다"며 "유선상으로 질문을 해도 직접 서류를 가져와서 방문 상담을 받으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잦은 대면으로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선 피로감을 느낀다는 불만이 종종 나온다.
지난해 집을 구매한 이 모씨(33)는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라 촬영을 못하게 해서 결국 두 번이나 방문해서 집안을 살펴야 했다"며 "계약할 때나 잔금을 치를 때도 부동산까지 가야 해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가 좋지 못할 때는 집을 보러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거나 심한 경우 집을 보여주지 않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 전자계약·VR견본주택…슬슬 언택트 바람?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최근엔 비대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6년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을 출범하고 2017년부터 전국 확대 시행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부동산에 모일 필요 없이 각자의 집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계약서를 확인한 뒤 서명하기만 하면 계약이 체결된다. 관련기사☞[언택트 부동산]'전자계약'하면 대출금리 깎아주는거 아세요?
낯설기만 했던 사이버 견본주택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기존의 견본주택은 사이버 견본주택으로 대체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유니트 곳곳을 촬영해 360도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건설사는 유튜브 생중계를 진행하며 동영상으로 유니트 내부를 보여주고 단지 특징 등을 소개한 뒤 실시간으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GS건설이 분양한 '덕은지구 DMC리버시티자이'의 경우 견본주택을 실제로 짓지 않고도 유닛 내부를 VR과 CG 등 프롭테크 기술을 활용해 100% 사이버로 조성해 분양을 진행하기도 했다.
부동산 정보플랫폼들도 언택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이다.
직방은 집 내부를 VR 촬영해 3D로 집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VR홈투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직방에 따르면 올 상반기 VR홈투어 매물의 평균 조회수는 전년 동기 대비 5.1배, 문의 건수는 9.7배 증가했다.
다방도 자체 전자계약시스템을 준비중이다. 주로 임대관리법인을 대상으로 계약이나 월세입출입 등 임대관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계약 가능한 매물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사이버 모델하우스 개념의 '3D 스마트뷰'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 아직은 갈길 멀지만 "일정수준 비대면화 필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식이 변화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부동산 거래의 비대면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집값이 수억원대에 달하는 만큼 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수요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집은 인터넷에서 쇼핑하듯 가볍게 사고 팔고 반품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직접 보고 계약하고자 한다"며 "언택트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인중개사들이 작성하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엔 실제로 가서 보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한 배수, 상하수도, 소음, 주변 유해시설 등이 포함돼 있다"며 "집 내부를 보여주는 AR이나 VR 서비스 활성화는 가능할 수 있지만 단순히 매물만 보여주고 비대면 계약을 체결하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주택 가운데서도 아파트의 경우 VR 등을 활용한 비대면 서비스를 확대하는 동시에 계약서 상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작성 과정에서 집상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더라도 책임소재나 하자보수 등을 명확히하는 경우 불필요한 절차를 다소 줄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거래의 플랫폼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수민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해 대면 절차가 크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페이퍼워크(서류 작업)가 많고 복잡하다"며 "특히 중개사를 통한 거래가 많고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고 짚었다.
그는 "언택트가 되려면 모든 페이퍼 작업이 전산으로 이뤄져야 하고 전산작업들이 기관들끼리 자동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거래가 플랫폼화 돼야 한다"며 "해외 선진국에선 그 절차를 없애고 절차를 한 단계 줄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아이바잉' 시스템이 있다. 아이바잉은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부동산을 사고 파는 방식이다. 매도자가 홈페이지에 매물을 등록하면 아이바잉 회사가 24시간 이내 가격을 제시하고 해당 가격이 마음에 들면 계약이 체결된다. 아이바잉은 이를 되팔거나 임대운영한다.
윤 책임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래도 언택트로 가는 추세"라며 "게다가 코로나19 확산에 임대차3법 시행으로 집을 보기가 더 힘들어지면서 국내서도 부동산 거래의 비대면화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