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규 아파트 분양이 점점 귀해지고 있다. 자잿값은 점점 오르는데 분양가 규제 완화 폭이 작다보니 정비사업 조합들이 일반분양 시기를 미루는 추세다.
강남권에선 아예 '후분양'으로 노선을 바꾼 재건축 사업지들도 속속 나온다. 공사비, 지가 상승 등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후분양까지 시행하면 수요자들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강남권은 지금 '후분양 시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단지들이 애초 계획보다 일반분양 일정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강남권에선 '후분양' 카드가 속속 나오고 있다.
후분양은 공정률이 80% 정도 됐을 때 분양하는 방식이다. 조합이 자금을 조달해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시공사가 자체 보유자금으로 돕는 사례가 많고 일반분양가를 높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는 최근 조합원 분양을 진행했지만 일반분양은 내년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단지는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과 가까운 '알짜 입지'로 총 641가구 중 263가구가 일반분양할 예정이라 분양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아 왔다.
지난해 6월 인근에서 분양한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에 이어 그해 하반기 일반분양을 할 예정이었으나, 계약을 취소했던 시공사와 소송전을 벌이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지난 2월 해당 소송이 마무리되면서 연내 분양이 예상됐지만 낮은 분양가를 이유로 최근 후분양으로 노선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래미안원베일리의 평당 분양가는 3.3㎡(1평)당 5653만원으로 인근 매매가격의 '반값' 수준에 책정된 바 있다.
서초구 '반포1단지 3주구'는 같은 이유로 시공사 선정 때부터 후분양을 선택했다.
이곳은 총 2091가구에 일반분양 537가구 예정으로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과 맞닿아있고 고속터미널, 신세계백화점 등 인프라가 풍부해 예비 청약자들의 수요가 높다.
지난 2020년 삼성물산이 준공 후 일반분양해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으로 수주에 성공했으며 후분양을 염두에 두고 공사를 진행 중이다.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서초구 방배동 '신동아 아파트'도 후분양 가능성이 높다.
493가구에서 843가구로 재건축하는 단지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 붙어 있는 초역세권 단지인 데다 초·중·고교가 가까워 시공사들도 수요자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해당 단지에 수주 의사를 내비친 한 건설사에 따르면 신동아 재건축 조합원들이 시공사들에 후분양을 요청한 상태다.
'분양가 더 올라?'...애타는 수요자들
이처럼 정비사업지들의 분양 연기는 한동안 지속할 전망이다.
자잿값, 땅값 인상 등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한 반면 분양가는 규제에 막혀 충분히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건축 허가 면적이 13.1% 증가했지만 착공은 되레 13.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용 건축의 경우 허가는 16.4% 증가했으나 착공은 28.8% 줄었다.
건설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공사비용이 오르자 건축 허가가 났음에도 쉽사리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상황에 정부도 지난달 분양가 상한제, HUG의 고분양가 관리지역 등 분양가 규제들을 일부 완화해주긴 했지만 완화 폭이 작아 업계의 빈축을 샀다.
이번 분양가상한제 개편을 통해 예상되는 분양가 상승률은 1.5~4%(국토교통부 시뮬레이션 결과)다.
가장 애가 타는 건 청약 대기자들이다.
공급자(정비사업지) 입장에선 분양가 규제 완화가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수요자 입장에선 가격 상승이 치명적이다. 특히 중도금 대출 규제의 마지노선인 '9억원'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가 이 문턱을 넘어버리는 경우 청약 시도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미 상한제 개편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시작됐다. 새 규정에 따라 지난 15일 기본형 건축비는 직전 고시(3월) 대비 1.53% 상승, 지상층 기본형 건축비는 1㎡당 182만9000원에서 185만7000원으로 오른다.
여기에 후분양까지 활성화되면 수요자들의 분양가 부담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다만 매수 심리가 위축되고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후분양이 '대세'가 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금 당장 경제 상황, 시장 환경도 대응하기 어려운데 후분양을 하면 수년 뒤 상황을 예측해야 되고 자금 조달도 쉽지 않다"며 "최근 미분양 발생 지역을 보면 대부분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고 가격이 조정되는 상황이라 이런 시기에 리스크를 안고 후분양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