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청약해, 돈은 나중에 생각하고."
이번 추석 명절도 어김없이 밥상머리 화두는 '집'이었습니다. 연휴 직전에 공급 대책이 나오면서 관심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가족, 친지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얹었는데요.
오고 가는 얘기들을 잘 들어보니 기시감이 들더군요. 한창 부동산 상승기였던 2~3년 전, 집이 없어서 못 사던 때로 돌아간듯 했습니다. 한동안 신중하던 주택 수요자들이 조급해지는 모습인데요.
그럴만도 합니다.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한동안 떨어졌던 집값이 올해 5월 이후부터 차츰 반등하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거든요.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 매매가격을 보면 서울 집값은 50주째 하락을 마치고 올해 5월22일(0.03%)부터 상승 전환했고요. 수도권은 6월5일(0.01%), 전국은 7월1일(0.02%)부터 상승 중입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하루 빨리 집을 사야 한다는 시각이 차츰 커지는 이유죠. 분양 시장은 또 어떻구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분양 아파트는 이미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규제지역이 대부분 풀리면서 서울 강남3구와 용산 4곳 말고는 분양가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는데요. 그럼에도 선분양인 만큼 입주 때쯤엔 시세가 더 오를 거란 기대감에 '그나마 저렴하다'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청약홈을 보면 올해 7~9월(청약일 기준) 분양한 아파트 13개 단지 중 강북구 '수유 시그니티'(전용 22~48㎡ 분양)를 제외한 나머지 단지들은 모두 1순위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는데요.
이중 동대문구 '청량리 롯데캐슬 하이루체'는 242.3대, 성동구 '청계 SK뷰'는 183.4대 1, 용산구 '용산 호반써밋 에이디션'은 162.7대 1 등 세자릿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분양가가 저렴했냐고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기간 분양한 단지는 국민평형(전용면적 84㎡)이 대부분 10억원 이상이었거든요. 발코니 확장 등 유상옵션을 포함하면 그 이상일테고요.
그럼에도 수요자들이 몰린 건 공급 부족 우려 탓으로 풀이됩니다. 자잿값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주택 사업자들이 공급 시기를 미루고 있거든요. 국토부에 따르면 올 1~8월 주택 인허가는 21만3000가구, 착공은 11만4000가구로 각각 39%, 56% 감소했는데요.
이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초기 비상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9월26일 주택 공급 활성화 대책을 내놨습니다. 시장에 공급 시그널을 주겠다는 목표였는데요.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주택 수요자들이 원하는 건 '아파트'인데 단기간에 공급 가능한 비아파트에 정책을 집중하면서 '공급 없는 공급대책'이라는 질타가 이어졌거든요.▷관련기사:공공주택 12만 가구 추가 공급…2만가구 수도권 신규택지도(9월26일)
3기 신도시 용적률 등 상향, 신규택지 조성 등을 통한 공공분양 확대도 있었지만 LH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사업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입주까지 너무 먼 얘기로 보이고요.
더군다나 공사비를 증액하는 기준 등도 도입하면서 분양가 상승만 불가피해졌습니다. 택지비도 상승세인데 공사비까지 인상의 길을 터준 상황이라 '오늘이 제일 싸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밖에요.
불안한 마음에 '일단 넣고보자'는 가수요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2030의 매수세가 대표적인데요.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에서 청약 당첨된 2만3388명 중 30대 이하가 1만2804명(54.7%)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러다 곧 분양가가 천장을 뚫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고 내 집 마련 수요자에게 마냥 신중히 움직이라고 조언하기도 민망합니다.
일부 수요자 중엔 정부의 말만 듣고 집을 안 사고 기다렸다가 '벼락 거지' 상황에 처한 뼈아픈 경험들이 있으니 말이죠. 시장이 안심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공급 시그널이 나오기 전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