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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부 세금 대예측]① 감세잔치는 끝났다

  • 2014.09.23(화) 17:33

소득·부가세 비과세 중단…'증세의 길' 돌입
상속세는 다시 완화 추진…'부자 감세' 불씨 여전

세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세부 조항들은 계속 진화(혹은 퇴화)한다. 하지만 매년 400여개의 조항이 바뀌는 세법 개정안은 웬만한 조세전문가들도 따라잡기 벅차다.

 

올해도 변함없이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번에는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도 함께 담겼다. 누더기가 되어가는 세금 제도에 조금이나마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가 밟아나갈 '세금 지도'를 예측해본다. [편집자]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를 맞아 두 번의 세법개정안과 중장기 조세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까지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했지만, 올해는 해당 문구가 빠졌다. 최근 담뱃세 인상을 비롯해 지방세 증세 방안을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전반적인 조세정책의 흐름을 증세(增稅)와 감세(減稅) 중 하나로 구분짓기는 어렵지만, 세목별로는 다소 뚜렷한 방향성이 나타난다. 소득세와 소비세(부가가치세) 부담은 늘리고, 재산과세(상속·증여세)는 완화한다.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는 세부담을 점점 줄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 "소득세 그만 깎을게요"

 

월급쟁이들은 소득세가 항상 많다고 느끼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이 다소 적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근거는 '글로벌 스탠다드'인데, 선진국에 비해 소득세를 덜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과의 비교 항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수의 비중이다. 단순히 세금이 얼마 걷히는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규모를 감안하는 개념이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수 비중(2011년 기준)은 3.8% 수준이다. 국민이 1000만원을 생산했다면 38만원을 소득세로 낸 셈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GDP대비 소득세수는 89만원(8.9%)으로 우리나라의 2.3배, 일본은 53만원(5.3%)으로 1.4배 많다. 유럽 국가들도 영국 101만원(10.1%), 독일 91만원(9.1%), 프랑스 75만원(7.5%) 등으로 소득세 비중이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85만원(8.5%)이다.

 

이런 통계 자료를 토대로 정부가 내린 결론은 소득세를 더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금을 받지 않고 있는 부분(비과세 소득)부터 차근차근 과세로 전환하고, 금융상품에도 더 이상 세금을 깎아주지 않을 방침이다. 대표적인 비과세 소득에는 근로자의 시간 외 근무수당이나 출산·보육수당, 실업급여, 각종 상금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과 비교하면 올해 주식양도차익 과세와 소득세 과세체계 조정안이 빠졌다. 지난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부임한 후 주식시장 부양에 신경쓰고 있다는 점에서 양도차익 과세는 일단 접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득세 과세체계도 현행 5단계 초과누진세율을 굳이 건드려서 국민적 공분을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 부가세 '면세'에 눈독

 

전체 세목 가운데 가장 많은 세수를 걷고 있는 부가가치세는 대표적인 '국민 세목'이다. 세율 1%만 올려도 6조원에 가까운 세수를 쓸어담을 수 있지만, 그만큼 거센 조세저항도 뒤따른다. 그래서 정부가 택한 전략은 면세품목을 과세로 바꾸는 방안이다. 이 방식은 세율 인상과 같은 직접적 증세 대신 '거위털'처럼 세금을 아프지 않게 뽑아내는 효과가 있다.

 

역시 OECD와의 비교도 빠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세율(10%)은 OECD 평균(2013년 18.9%)의 절반 수준이고, GDP 대비 세수비중도 4.4%(2011년 기준)로 OECD의 6.9%에 비해 낮다. 특히 부가가치세 면세 범위가 넓어서 세수가 적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유럽연합(EU)과 OECD에서도 부가가치세 면세 품목인 미가공식료품과 영리교육용역, 도서와 신문, 예술창작품에 대해 과세로 전환하라고 권고하는 분위기다. 정부도 OECD의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학원비에 부가세 과세를 추진하고 있다. ☞관련기사 [단독] '학원비에 부가세 매겨볼까'..기재부 연구용역보고서

 

기재부는 "부가가치세 과세 범위를 국제적 기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며 "과세 범위 확대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원비 외에 금융용역이나 신종 의료서비스 수수료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 부자 감세의 '히든카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을 놓고 야당은 일단 '부자 감세'부터 철회하라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한 사상 최대의 감세 정책은 소득세와 법인세, 부동산 세금(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까지 망라한다.

 

2008년 정부안 가운데 '상속·증여세율 인하' 만큼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워낙 극소수의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세율 인하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극에 달했다. 상속세는 지난해 4619명만 낸 원조 '부자세금'이고, 증여세 신고인원도 8만명에 불과하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 방안은 박근혜 정부의 중장기 플랜에 다시 담겼다. 기재부는 지난해에 이어 상속·증여세율 적정화(인하)를 지속적으로 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통계 자료를 내세웠다(프랑스 45%, 미국·영국 40%, 독일 30%).

 

재산세금의 GDP 비중도 OECD 국가의 2배(대한민국 3.0%, OECD 1.8%)에 달하기 때문에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세율부터 내려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그러나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다수의 국민을 향한 증세 방침과 엮이면서 '부자 감세'의 역풍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도 2년째 세법개정안에 담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 "대기업은 걱정마세요"

 

대기업들은 당분간 법인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정부는 임기 내에 법인세율을 인상할 계획이 전혀 없다. 오히려 기업의 세부담을 낮추는 쪽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도 4.0%로 OECD 국가(평균 3.0%) 중 5번째로 높다는 통계치도 갖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도 기업의 역할에 근간을 두고 있다. 기업의 소득이 개인의 소득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를 통해 기업의 투자와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6년 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법인세율을 깎을 때 강조한 '감세 선순환 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법인세 과표구간을 간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로 구성된 3단계 구간을 2단계로 복원할 방침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법인세를 3단계로 운영하는 곳은 3곳(대한민국, 미국, 벨기에)에 불과한 반면, 단일세율 국가는 23개국, 2단계는 8개국이다.

 

만약 정부가 3년 전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2%'의 2단계 세율 체계로 돌아간다면 중견기업과 일부 대기업들의 세부담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과표구간 하나를 없애더라도 법인세율 인하를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 세율 인하의 수혜는 역시 많은 이익을 내는 대기업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조세개혁은 없다."

 

박근혜 정부의 조세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난해 출범 초기만해도 중장기 조세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 그런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중장기 '방향'만 숙제처럼 던져놓고 있는데, 실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임기 5년 중 2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연말정산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과 기업소득 환류세제 도입을 들 수 있는데, 개혁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오히려 국민을 거위에 비유한 '거위털' 발언에서부터 '비(非)증세' 약속을 어기는 등 최악의 조세 여론을 몰고 온 정부로 기억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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