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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부 세금 대예측]④ 풍선에 갇힌 법인세

  • 2014.09.26(금) 08:03

3단계 과표구간 간소화 추진…기업 세부담 증가 불가피
세율 인하로 대안 모색…부자감세 논란 '무한 반복'

기업이 내는 세금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줄곧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법인세 부담을 줄여야 기업의 경쟁력이 생기고,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시장친화적 조세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최근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서 법인세 관련 추진 과제는 지난해 발표 자료를 거의 그대로 복사했다.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기업의 생애주기별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투자·연구개발에 대한 세제지원을 지속한다.

 

법인세 과표구간을 간소화하는 방침도 핵심 과제에 담겨 있다. 2012년부터 3단계로 나눠진 세율 구조를 2단계로 되돌린다는 계획이지만, 과표구간의 적정선을 찾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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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감세' 대안은 '누더기'

 

현행 법인세율 3단계 구조는 시행 기간이 2년여에 불과하다.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2억원 이하 10%, 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로 세율을 매기는데, 이익 규모에 적절한 누진 세부담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부가 굳이 법인세율을 간소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의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법인세율을 3단계 이상으로 가져가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3곳(미국·벨기에) 밖에 없다. 반면 독일과 호주 등 23개국은 단일세율이고, 2단계로 법인세를 매기는 국가도 영국·일본 등 8개국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국제적 추세와 반대로 법인세율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 배경에는 '부자 감세'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법인·소득세율 인하 등 사상 최대의 감세 정책을 내놓은 기획재정부는 부자와 대기업들의 세부담만 줄였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2011년에 내놓은 고육책이 바로 3단계 법인세율이었다.

 

원래 2012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출 예정이었지만, 법인세 과표 2억~500억원 구간에 20%의 중간 세율을 끼워넣고 과표 500억원 초과 구간은 22%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정부로서는 법인세 감세 계획을 철회한다는 의미였다. 이후 국회의 법안 논의과정에서 법인세 최고 과표구간은 200억원으로 낮춰졌고, 세율 구조는 누더기처럼 변해버렸다.

 

◇ U턴하면 세부담 급증

 

법인세 과표구간을 간소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세법의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중간구간을 신설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간단히 2단계 세율 구조를 갖출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세부담이 늘어난다는 문제가 생긴다. 만약 법인세율 체계를 '과표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2%'로 단순화하면 현재 과표 2억~200억원 사이의 중소·중견기업들의 세부담은 2%p(20→22%) 만큼 올라간다. 과표 100억원인 기업이 낼 법인세가 약 20억원에서 22억원 정도로 늘어나는 셈이다.

 

대기업들도 실제 법인세를 계산할 때 중간세율 구간의 인상된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세부담이 다소 증가한다. 과표 500억원인 기업의 경우 중간세율이 사라지면 세부담은 약 106억원에서 110억원 정도로 늘어난다.

 

즉 법인세 과표구간의 '원상복귀'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중견기업과 대기업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증세'의 부담을 느끼게 된다. 정부도 기업들의 세부담을 늘리면서까지 과표구간 간소화를 추진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 세율 내리면 또 '부자감세'

 

기업들의 세부담 증가를 막으려면 전반적인 세율 조정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기재부가 의뢰한 '법인세 세율 및 과표구간의 적정성 검토' 용역보고서를 통해 "장기적으로 단일세율로 가려면 낮은 세율을 적용받던 기업의 세부담 증가를 완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인세율을 2단계로 간소화하면서 최고세율을 20% 수준으로 내리면 중소·중견기업의 세부담은 증가하지 않는다. 대신 과표 200억원을 넘는 대기업들은 기존 22%에서 20%로 세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발생한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세부담은 그대로인데, 대기업만 감세 혜택을 누리게 된다.

 

과표 2억원 이하 구간에도 기존 10%의 세율을 더 낮추는 방안도 있지만, 실제 부담 세액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부자 감세'의 여론을 무마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야당에서는 오히려 법인세율을 25%로 되돌리자고 주장하고 있어 정부가 세율 인하를 병행할 경우 적잖은 의견 충돌도 예상된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나."

 

정부가 중장기 정책으로 제시한 법인세 과표구간 간소화는 증세와 감세의 경계선에서 '외통수'에 몰렸다. 증세로 가면 기업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감세로 가면 야당의 '부자' 공격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 직후 강조한 '지도에 없는 길'은 이럴 때 필요하다. 여론의 눈치만 보다간 임기 내에 과표구간 간소화는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가장 깔끔한 대안은 과표구간과 세율 체계의 지도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과연 현 경제팀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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