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식 가치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오너가 계열사의 빚을 탕감해 준데 대해 매긴 증여세는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6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최근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과 그의 자녀인 구본우, 구미란씨가 영등포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 취소 소송에서 구 회장 일가의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국세청이 구 회장에게 추징한 증여세는 3억4990만원이다. 구자극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으로, 5년 전 LG 일가의 1000억원대 주식 증여세 불복 사건에서 인용(납세자 승소) 결정을 받아낸 바 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구 회장이 3억원대 증여세 소송에 나선 배경에는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아이리스아이디의 경영 악화와 맞닿아 있다. 홍체인식 출입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이 회사는 2004년에 설립됐는데, 2010년부터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구 회장은 자신의 신용을 바탕으로 외부에서 수백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회사에 빌려줬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구 회장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10억원씩의 대여금 이자를 면제해줬다. 본인이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이자를 탕감해 자구 노력을 한 것이다.
아이리스아이디 입장에서는 대표의 통큰 채무 면제가 고마운 일이었지만, 국세청의 시각은 달랐다. 회사의 주주가 모두 구 회장과 그의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아이리스아이디의 주식은 구 회장이 40%를 갖고 있고, 그의 아들인 본우씨와 딸 미란씨가 각각 43.33%와 10%를 보유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구 회장이 회사의 채무 20억원을 면제해주면서 그 이익이 자녀들에게 돌아갔다고 판단했다. 자녀들에게 이익을 물려줬으니 증여세를 내라는 것이었다. 당초 증여세는 자녀들에게 부과됐지만, 구 회장이 연대납부의무자로 지정돼 실제 세금을 부담하게 됐다. 구 회장은 세금을 못 내겠다며 조세심판원에서 불복 청구를 냈지만, 지난해 6월 기각 처분을 받고 행정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법원에서는 국세청과 다른 해석을 내놨다. 아이리스아이디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2010년 이후 자본이 마이너스 상태로 내몰렸고, 주주들이 가진 주식도 사실상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주식 1주당 가액은 채무면제 전후 모두 0원으로 주식 가치가 증가된 바 없다"며 "주주들의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없으니 증여세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한편 구 회장은 반도체공장의 클린룸과 인테리어용 고급 파티션을 주력으로 하는 엑사이엔씨(코스닥 상장사)를 비롯해 스피커 제조회사 엠소닉, 아이리스아이디 등의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