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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뇌물]②용서받지 못한 리더들

  • 2016.08.17(수) 09:57

"청장의 지시" vs "시킨 적 없어"..법정서 '네 탓' 공방
"국세공무원 망신, 혜택은 다 누려"..오랜 선행도 물거품

CJ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그의 '심부름꾼' 허병익 전 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은 법정에서 서로 책임을 미뤘다. 두 사람은 판결을 앞두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오로지 형량을 낮추기 위해 국세청 리더로서의 품격은 벗어 던졌다.
 
하지만 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2013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 전 청장에게 징역 4년, 허 전 국장에게는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석 달 후 서울고등법원이 전 전 청장의 형량을 징역 3년6월로 줄였지만, 그들은 억울하다며 나란히 항소했다. 하지만 뇌물을 받은 국세청 고위직들에게 관용은 없었다. 2014년 4월 대법원은 두 사람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5 "모든 건 네 탓이오"
 
"(군자는)하늘을 원망하지도 남을 탓하지도 않는다(불원천불우인 不怨天不尤人)"
 
서울고등법원의 임성근 부장판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전 전 청장과 허 전 국장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두 사람이 함께 책임져야 할 사안이지, 상대방을 탓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허 전 국장은 CJ로부터 뇌물을 받은 과정이 모두 전 전 청장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 전 청장은 그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허 전 국장이 대학 동창인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을 통해 먼저 청탁과 뇌물수수를 제의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들의 볼썽사나운 책임회피 공방은 법원에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형량을 줄이키는커녕 오히려 판사로부터 꾸지람만 들었다. 한때 그들을 최고책임자로 모셨던 2만명의 국세공무원들에게도 적잖은 굴욕을 안겼다.
 
#6 전군표의 죄..'국민신뢰 훼손'
 
"당신은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일선 세무공무원들에게 깊은 자괴감과 실망감을 안겼다."
 
세금 징수기관인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다. 만약 뇌물을 받고 특정 납세자의 세금 문제를 봐주면, 성실하게 세금을 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른바 '조세형평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들을 통솔하는 국세청장은 최고 수준의 청렴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전 전 청장은 세무조사를 앞둔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게다가 부하직원을 시켜서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등 죄질이 매우 나빴다는게 재판부의 해석이다.
 
국세청 조직 전체에도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남겼다. 현직 국세청장이 구속된 것도,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한 경우도 전 전 청장밖에 없었다. 전 전 청장이 세무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하게 훼손시켰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 2013년 8월1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한 전군표 전 국세청장. 전 전 청장은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7 허병익의 죄..'못난 상사 말려야지'
 
"상사인 국세청장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 잡기는커녕 뇌물수수 범행의 단초를 제공했다."
 
허 전 국장도 뇌물수수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뇌물을 받을 때 국세청장을 대신해 심부름을 자청하는 등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CJ와의 은밀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세청 고위공무원에 오른 후에도 대학 동창인 신 부사장과 지속적으로 만나왔고, 퇴직 후에는 CJ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근무하는 혜택을 누렸다.
 
#8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28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훈장 2회, 포장 1회 등 나름대로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수행했다."
 
법원은 전 전 청장과 허 전 국장이 CJ로부터 뇌물은 받았지만, 실제로 세무조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증거는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전 전 청장은 뇌물 30만달러 중 일부를 국제회의 비용과 해외 출장 직원에 대한 격려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 전 국장의 선행도 다시 한번 조명됐다.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에 있는 분교가 폐교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노모를 위해 20년 넘게 월 2회씩 꾸준히 고향을 방문한 '효행'도 인정했다.
 
다만 형량을 줄이는 문제와는 별개였다. 법원은 그들이 국가에 봉사하고 선행을 실천한 것은 분명하지만 대기업과의 부적절한 뇌물수수를 통해 국세공무원의 위상을 추락시킨 점에 더 무게를 뒀다. 국세청장의 뇌물수수는 어떠한 선행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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