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라."(시아버지)
"아들 못 낳는 며느리 필요 없으니 당장 짐 싸라."(시어머니)
한의사 남편을 둔 전업주부 김모씨는 두 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남편은 제법 규모가 큰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요. 시댁의 재산도 상당했던 만큼 경제적으로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죠.
유일한 고민은 장손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가끔씩 시부모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두 딸이면 충분하다는 남편의 따뜻한 위로 덕분에 견딜 수 있었죠.
▲ 삽화/변혜준 기자 jjun009@ |
그런데 시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반드시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라"는 유언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는데요. 심지어 아들에게 장손을 낳아줄 다른 여자를 소개하고, 합방을 종용하는 등 극성을 부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지병이 악화되자 며느리에 대한 짜증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가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던 시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며느리 탓으로 돌리면서 아들과 이혼하라고 행패를 부렸는데요.
시어머니의 구박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합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남긴 재산 가운데 일부를 위자료로 떼어주고 손녀들의 교육비까지 챙겨주면서 그녀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이혼한 아들은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였습니다. 자신의 한의원에 어머니를 매일 모셔와서 치료했고 산삼과 장뇌삼, 상황버섯 등 고가의 건강식품도 꾸준히 챙겨드렸죠. 집에서 어머니를 하루종일 돌보는 간병인까지 두는 등 최선을 다했는데요.
아들의 정성스런 간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지 못했고 1년간의 의식불명 끝에 2013년 6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12월 아들을 비롯한 유족들은 어머니가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8월 국세청은 아들에게 증여세를 추징했습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어머니 계좌에서 아들의 한의원 사업용계좌로 39건의 이체가 이뤄졌는데 이를 사전증여로 본 겁니다.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치료비와 간병비를 받은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국세청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세청이 확인해보니 실제로 어머니를 간호하고 부양한 사람은 한의사의 동생이었습니다. 한의사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통장을 직접 관리하면서 한의원 임대료와 직원 급여를 지급해온 겁니다.
한의사는 과세 처분이 억울하다며 심판청구를 냈지만 조세심판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판원은 "한의사의 사업용 계좌로 이체된 자금이 한의원 운영자금으로 사용된 사실이 확인된다"며 "모친의 치료비와 간병비로 사용했다는 주장도 입증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전 부인 김모씨에게 지급한 위자료는 증여세 과세대상인지 여부를 다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심판원은 "혼인관계의 파탄 책임이 있는 시어머니가 아들을 대신해 위자료를 지급했는지 여부를 재조사하라"고 국세청에 통보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준 위자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혼 위자료를 지급할 경우 아들에게 증여세를 물린다. 남편이 부인에게 지급했어야 할 위자료를 시어머니가 대신 지급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아들 사이(직계존비속)의 증여로 보는 것이다. (국세청 질의회신, 재산세과-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