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성모씨는 지난해 11월 컴퓨터가 랜섬웨어 공격을 받으면서 가상화폐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해커가 랜섬웨어 복구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한 겁니다.
이때부터 성씨는 꾸준히 비트코인을 수집했고 당시 8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면서 1년 만에 수천만원의 시세차익을 누리게 됐는데요. 성씨는 비트코인 거래 과정에서 세금을 한 푼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상화폐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상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은 6일 기준 1400만원대(1BTC)를 돌파하면서 지난 4월(140만원)보다 10배나 급등했습니다.
기존 화폐를 대체할 새로운 결제수단이자 희소성을 지닌 투자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통해 거액의 투자수익을 올리거나 자녀에게 물려주더라도 국세청이 세금을 물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죠.
국세청은 최근 가상화폐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과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가상화폐 이용자들은 앞으로 어떤 세금을 내게 될지 살펴봤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 가상화폐가 뭐길래
가상화폐란 실물 대신 사이버상에서 거래할 수 있는 화폐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 등 1300여종이 있습니다. 인터넷 주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고 개인 정보도 노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상화폐가 널리 사용되면서 세계 각국은 가상화폐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는데요. 아직까지 통일된 과세 기준은 없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독일 등은 가상화폐에 법인세를 부과하는데요. 기업이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실물과 마찬가지로 과세하는 것이죠. 또 개인이 가상화폐를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양도소득세를 물립니다. 가상화폐를 1000만원에 구입해 3000만원에 팔았다면 양도차익 2000만원에 대해 양도세를 매기는 겁니다.
부가가치세는 대체로 부과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은 일종의 통화나 결제수단으로 간주해 부가세(소비세)를 물리지 않죠. 다만, 독일은 가상화폐를 통한 거래를 물물(재화)교환으로 취급해 부가세를 매기고 있습니다.
# 법인세·상속증여세 '갸우뚱'
우리나라도 가상화폐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부과하는 건 가능합니다.
김병일 강남대 교수가 국세청에 제안한 '가상화폐 과세기준 정립 및 과세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나 법인 사업자가 가상화폐를 통해 벌어들인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현행 세법에서도 과세가 가능하다는 해석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고 현금 대신 가상화폐를 받았다면 그 수입에 대해서는 당연히 법인세를 물려야 한다는 거죠.
문제는 국세청이 추징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법인의 가상화폐 거래내역을 국세청이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최근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용역의 대가를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주고 받는 사례도 있었지만 국세청의 과세망에 포착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상속세와 증여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교수는 "가상화폐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산이기 때문에 현행 세법으로도 상속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자산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이 세법에 따라 과세하려면 먼저 가상화폐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아직 세부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 부가세 과세는 가능한데
그렇다면 소비자가 물건을 살때 10%씩 붙는 부가세 부과는 가능할까요. 국세청은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판단합니다.
국세청은 '비트코인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로서 거래되는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에 해당한다'(2014년 8월, 2015년 12월 국세청 질의회신)고 봅니다. 예를 들어 사업자가 비트코인을 1000원에 매입해 1100원에 개인에게 판매한다면 10%의 부가세를 신고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상화폐의 거래가 사업적 성격을 띤다면 당연히 부가세를 과세해야 한다"며 "국세청에도 질의회신을 토대로 세원 관리를 확실하게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비트코인을 화폐(지급수단)로 통용할 경우에는 부가세 과세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인데요. 이미 부가세를 비과세하고 있는 외국과 같은 입장입니다.
▲ 출처: 국세법령정보시스템 |
# 시세차익에 양도세 매긴다면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세금은 바로 양도세입니다. 가상화폐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 매도할 때 차익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행 소득세법에는 가상화폐가 과세 대상에 열거되지 않은 상태(소득세 열거주의 방식)여서 양도세 자체를 매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세청은 가상화폐에도 양도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국세청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단순 투자 목적의 거래가 많은데 매매차익이 발생해도 현행법으로는 과세하기 어렵다"며 "가상화폐 매매차익을 소득세법상 (양도세) 과세 대상에 추가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양도세를 과세할 수 없다면 증권거래세처럼 가상화폐를 구입할 때 일부를 거래세 형태로 떼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가상화폐에 양도세나 거래세를 매기려면 결국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세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가상화폐 과세를 놓고 국세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국세청이 가상화폐 시장 현황부터 면밀하게 파악한 후 미비한 점이 있으면 세법 개정으로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세청 세종청사 내부(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국세청이 파악할 수 있을까
세법상 과세 규정이 마련되더라도 국세청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현재로선 가상화폐의 거래내역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투자자를 상대로 섣불리 과세하기 어려운 구조인데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거래내역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과세의 관건입니다. 국세청은 가상화폐 거래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거래소 등록제나 거래자 본인확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규안 한국납세자연합회장(숭실대 교수)는 "가상화폐에 과세하려면 거래소들이 국세청에 소유권 변동내역을 제출하도록 의무화 해야 하고, 정부 부처간 협업을 통해 가상화폐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