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 국제금융시장의 자본 이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의 상승은 급격한 자본유출을 방어할 버팀목이라는 의미가 크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크게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실제로 정부가 구조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해놓은 탓에 무디스가 오히려 찬물을 뿌린 격이 됐다.
무디스 신용평가의 한계는 차치하고 그동안 경제 심리 운운하던 정부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데도, 일부 효과가 의문시되는 법안을 가지고 오히려 위기론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한국 신용등급 역대 최고 수준
무디스는 지난 주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a3에서 Aa2로 한 단계 올렸다. Aa3 등급으로 오른 지 3년 4개월 만이다. Aa2는 전체 21개 등급 중 3번째로 높은 초우량 등급이고,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 등급이다. 주요 20개국 가운데 이보다 높은 등급은 미국과 독일, 캐나다, 호주, 영국, 프랑스 등 6개국밖에 없다.
투자 적격 등급에 속해 있는 27개국 중 무디스가 올해 신용등급을 올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무엇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넘어선 한국 경제가 새로운 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최고 신용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 정부가 앞장서 위기론 조장
중국 경제는 부진하고, 미국마저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은 한국 경제에 큰 지원군이 될 전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점에 무디스의 결정은 이런 우려를 차단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는 오히려 위기를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구조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를 압박하기 위해 우리 경제가 비상사태에 있다면서 바람을 잡아놓은 탓이다.
최 부총리는 “이번 등급 조정은 박근혜 정부 3년간의 경제 성과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라면서도 “구조개혁 입법이 지연되면 경제 활성화를 저해하고, 국가신인도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구조개혁이 후퇴하면 신용등급은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면서 “추가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입맛대로 경제 인식 부메랑 될 수도
물론 무디스의 신용평가는 현재 빚을 갚을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허점이 많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산업 구조조정 등 구조개혁 문제는 여전히 딜레마에 빠진 것도 현실이다.
빠른 고령화와 경기부양을 위한 지출로 국가 부채가 급격히 늘고 있고,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악화일로에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은 간과한 측면도 강하다. 무디스는 “현재 추진 중인 구조개혁이 후퇴하거나 장기 성장 전망이 악화할 경우 신용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가 구조개혁 입법의 필요성 때문에 위기론을 조장하고, 대통령의 비상재정명령까지 들먹이는 건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한다.
그동안 경제 심리를 살리겠다면서 재정을 쏟아붓고, 성장률 치장에 나서고 있는 정부가 이젠 위기론을 설파하는 등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극단으로 오락가락하는 경제 인식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 중소기업 CEO는 “4대 부문의 개혁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일부 요소는 오히려 대기업 위주의 성장만 가속할 뿐 경제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무턱대고 밀어붙일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