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 허가의 최종 관문이자 핵심 잣대였던 '중추적 임상시험(통상 임상 3상) 2건' 요건을 사실상 폐지한다. 앞으로는 '1건의 임상'만으로도 신약 승인의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임상시험은 1-2-3상을 거친 이후 또 한번 3상을 통과해야 신약 승인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3상을 한차례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신약 상업화를 앞당겨 산업계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규제 완화 드라이브가 FDA 심사 기준까지 바꿔놓을 전망이다. 막대한 임상 비용과 시간에 짓눌렸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는 새로운 미국 시장 진출의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상 3상 1건으로 '신약허가'까지
24일 업계에 따르면 마틴 마카리(Martin A. Makary) FDA 국장과 비나이 파사드(Vinay Prasad)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 센터장은 최근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을 통해 이 같은 심사 정책의 대전환을 공식화했다.
전통적으로 FDA는 효과가 없는데 있다고 결론 내리는 '통계적 오류'를 막기 위해 2건의 중추적 임상시험 결과를 요구하는 것을 역사적 근간으로 삼아왔다. 질환 특성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하긴 했지만, 단일 임상 승인은 주로 항암제 등 일부 혁신 신약에만 국한된 예외적 특례였다.
하지만 FDA는 이번 조치로 제한적이었던 특례를 모든 신약 심사의 '기본 원칙'으로 격상시켰다. '원칙 2건, 예외 1건'이었던 지난 수십년간의 심사 기조가 '원칙 1건, 예외 2건'으로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FDA는 다만 이러한 심사 기준 완화가 자칫 효과가 없거나 검증이 덜 된 의약품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으로 이어질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마카리 국장과 파사드 센터장은 "대조군이 부실하거나, 평가변수가 의심스럽거나, 통계 계획이 사후에 만들어지는 등 임상 설계 자체가 부실하다면 2~3건을 진행해도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규제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단 1건을 하더라도 대조군·평가변수·효과 크기·통계 프로토콜 등 연구 설계의 전 과정을 더욱 깐깐하게 검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여전히 약물의 작용 기전이 불분명하거나 임상시험 자체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면 추가 임상을 요구받을 수 있다.
막대한 비용·시간 감축…약가 인하 정당성 확보
이러한 FDA의 파격적인 입장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규제 철폐 및 산업계 비용 절감 기조와 맞물려 있다.
FDA에 따르면 단일 중추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은 약 3000만 달러(약 430억원)에서 1억5000만 달러(약 2200억원)에 달하며, 임상 완료까지 수년이 소요돼 평균 신약 출시 기간은 7년을 훌쩍 넘긴다.
임상 요건을 1건으로 줄여 제약사의 자본 부담을 낮추면, 미국 내 높은 약가를 정당화하던 주된 논리(막대한 R&D 비용)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FDA의 셈법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세포·유전자치료제(CGT)의 화학·제조·품질관리(CMC)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해 상용화 문턱을 낮추고, 바이오시밀러 임상 면제를 추진하는 등 시장 진입을 수월하게 하는 등 규제 완화 정책을 연이어 펴고 있다.
K바이오, '가성비 임상'으로 미국 진출 기회
국내 바이오 업계는 이번 FDA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막대한 임상 비용 탓에 글로벌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기업들이 이른바 '가성비 임상'을 통해 미국 시장을 두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이슈 브리핑을 통해 "과거에는 '임상 2건 확보' 자체가 신뢰성의 신호로 작용했으나, 앞으로는 단일 시험이라도 설계의 완성도와 기전적 설득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장 미국 후기 임상을 준비 중인 기업들의 기대감도 감지된다.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E1K'의 미국 임상 3상을 추진 중인 엔솔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E1K 역시 미국 임상 3상을 한 번만 수행해도 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임상CRO협회 고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재정이 부족한 국내 기업에게는 분명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FDA가 권한(규제 완화)을 주면서 동시에 엄격한 의무(설계 완성도)를 요구하는 만큼, 치밀한 임상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