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유한양행이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무려 한 세기 동안 국내 대표 제약사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유한양행을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업력이 아니라 그 긴 시간을 버텨낸 방식이다. 전무후무한 전문경영인 승계, 기업 이윤의 공익재단 환원, 그리고 꾸준한 글로벌 신약 개발(R&D)까지 유한양행의 100년은 치열한 선택과 혁신의 연속이었다.
'보건 자립' 출발…소유·경영 분리 확립
유한양행이 첫발을 내디딘 1926년은 민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시기였다.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는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신념으로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국민 상비약 '안티푸라민' 등 필수의약품을 자체 생산하며 보건 자립의 토대를 닦았다. 무엇보다 제약업을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신성한 사업'으로 규정하며 품질 지상주의를 고집한 것은 훗날 유한양행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유한양행의 역사가 한국 제약업을 넘어 한국 기업사의 상징적 장면으로 탈바꿈한 결정적 계기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나왔다. 1969년 유일한 박사는 혈연이 아닌 평사원 출신의 조권순 전무에게 사장직과 경영을 맡겼다. 오너 일가의 세습 경영이 당연시되던 한국 기업사에서 파격이었다.
창업자의 개인 지분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으로 환원돼 기업의 최대주주로 자리 잡았다. 오너가 없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가 오너인 기업'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를 통해 기업이 창출한 이익이 배당을 거쳐 장학·복지사업으로 사회에 되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단순한 선언을 넘어 실제 지배구조로 구현한 이 모델은, 공익적 구조 속에서도 기업이 지속 성장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오픈 이노베이션 승부수…신약 '렉라자' 결실
단단한 지배구조 위에 쌓아 올린 유한양행의 경쟁력은 최근 10여 년간 집중된 과감한 R&D 투자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은 2010년대 중반부터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개념을 도입해, 외부 바이오텍과의 협력 모델을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이를 통해 자체 개발만 고집하지 않고 유망한 후보물질을 적극 도입해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집중 투자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러한 행보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성공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2015년 오스코텍과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도입한 이 신약 후보물질은 유한양행의 임상 역량을 거쳐 가치를 키웠고, 2018년 글로벌 파트너사 얀센에 대규모 기술수출을 이뤄냈다. 이후 공동 임상 개발을 이어간 끝에 마침내 2024년 8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쾌거를 달성했다.
단일 신약의 성공을 넘어, 국내 바이오 벤처의 초기 연구를 대형 제약사가 넘겨받아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키워내고 수익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K-바이오 생태계 선순환'의 롤모델을 증명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한양행은 현재도 다수의 바이오 벤처와 협력해 '제2의 렉라자'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적극적인 오픈 이노베이션과 전략적 투자를 통해 국내 바이오 산업 전반의 동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식 화두 "성찰과 새로운 100년"
유한양행은 지난 19일 관계사와 협력사를 초청한 대외 기념행사를 연 데 이어, 20일에는 서울 대방동 윌로우하우스에서 공식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창업주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조부의 창업 정신인 사회적 책임, 정직, 능력주의, 사람 중심 경영을 열거하며 "10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가치들이 지금도 실천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자만이나 안주를 경계하고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한 이 발언은 유한양행이 어떻게 한 세기를 버텨왔는지를 보여준다.
조욱제 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유한양행이 100년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여는 'Progress(발전)'와 원칙을 지키며 품격을 높여가는 'Integrity(청렴)'라는 변하지 않은 두 가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이어 "글로벌 혁신 제약사로 도약해 국민의 건강을 넘어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는 유한양행의 'Great Yuhan, Global Yuhan' 여정은 다시 시작됐다"며 "신뢰의 100년 위에, 약속의 100년을 더하겠다"고 강조했다.
유한양행의 다음 100년은 창업 정신을 글로벌 신약 혁신 개발, 환자의 치료 접근성 확대, 그리고 투명 경영으로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문경영과 R&D로 생존 방정식을 증명한 유한양행의 두 번째 세기가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