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배터리 3사의 공장 가동률이 일제히 50% 아래로 떨어졌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 성장 국면에 들어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 공세가 겹친 가운데 업계는 생산 축소 대신 연구개발과 사업 구조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장 커지는데 점유율은 하락
24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가동률은 각각 47.6%, 50.0%, 48.7%로 집계됐다. 지난 2022년 70~80%대를 웃돌던 가동률은 3년여 만에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가동률 하락은 곧바로 실적 붕괴로 이어졌다. 지난해 배터리 3사 합산 영업이익은 1조308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1조7223억원 적자로 급락했고 SK온도 9319억원 적자를 이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만 1조3461억원 흑자를 냈지만 전체를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기차 시장 자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147만대로 전년 대비 21.5%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의 질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 2021년 100%를 웃돌던 정점에서 △2022년 50%대 △2023년 30%대 △2024년 20%대 중반으로 급격히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20% 초반에 머물렀다.
성장세는 유지됐지만 사실상 둔화 국면에 진입한 셈이다. 성장의 중심은 중국과 유럽으로 이동, 북미는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보조금 축소로 수요가 꺾이면서 배터리 수요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이어졌다.
시장 흐름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사용량은 1187GWh로 31.7% 증가했다. 수요는 늘었지만 국내 3사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합산 점유율은 15.4%로 3.3%포인트(p) 떨어졌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기간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앞세워 격차를 더 벌렸다.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를 무기로 내수는 물론, 유럽 등 해외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는 모습이다.
적자 속 투자 확대…생존 위한 '승부수'
하지만 투자 전략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배터리 3사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총 3조605억원을 투입했다. 전년보다 약 4000억원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 1조3275억원 △삼성SDI 1조4209억원 △SK온 3121억원 등으로 세 회사 모두 투자를 확대했다. 실적이 꺾인 상황에서 이례적인 선택이다.
업계는 이를 '생존 투자'로 본다. 중국 CATL이 연간 4조7000억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 상황에서 투자까지 줄일 경우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기술 경쟁력마저 밀리면 수요가 회복되는 시점에도 반등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술 경쟁의 핵심은 '전고체' 배터리다. 기존 리튬이온 대비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삼성SDI는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가장 앞선 일정표를 제시했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2029년을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리튬 대신 나트륨을 활용한 차세대 배터리 연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이 장악한 저가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이다.
배터리 수요 역시 전기차에 머물지 않고 빠르게 확산되는 흐름이다. 데이터센터 로봇 드론 등 고성장 산업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 특히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고출력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에 맞춰 배터리 업체들도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관련 기술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업 구조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돌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에 들어가며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붙였다. 삼성SDI와 SK온도 북미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단순 생산 조정 수준을 넘어 사업의 축을 재편하는 모양새다.
실제 수주도 뒤따르고 있다. 최근 삼성SDI는 미국 에너지 기업과 약 1조5000억원 규모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대형 ESS 공급 계약을 확보하며 새로운 수요 기반을 넓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 전기차 수요 둔화로 단기 실적 회복은 불가피하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ESS는 구조적 수요 확대가 뚜렷해 가동률과 수익성 방어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버티는 국면이지만 기술 및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기업만 다음 사이클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