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투자증권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을 선 지방 사업장에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유진투자증권은 대출을 집행한 3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지만 대주단이 만기연장에 합의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다른 중형증권사들도 만기연장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분양이 저조한 지방 사업장이 다수인 만큼 경계감을 낮추기 어려워 보인다.
시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지방 사업장에 자금을 대는 후순위 PF 익스포져(위험노출금액) 비중이 큰 만큼 부실 우려가 대형증권사보다 높은 탓이다.
300억 날릴 위기서 한숨 쓸어내린 유진증권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진투자증권이 300억원의 매입확약 계약을 체결한 고령 월성산업단지 개발사업에서 지난 6월 EOD 사유에 해당하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했다. 다만, 대주단과 신탁사가 만기연장에 만장일치로 동의하면서 극적으로 EOD에서 벗어났다.
시행사인 월성산단은 경상북도 고령군 단산면 월성리에 산업단지와 폐기물 매립시설을 짓기 위해 2022년 5월 총 1700억원의 PF 대출을 일으켰다. 이중 새마을금고중앙회 등 32개 기관이 선순위 대출에 참여했고, 롯데카드 등 2개 기관과 유진투자증권이 대출 주관 및 자산관리를 맡은 SPC 더블유에스제이차가 중후순위 대출을 맡았다.
더블유에스제이차는 총 300억원 한도의 대출약정을 체결했고,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시장에 발행했다. 주관을 맡은 유진투자증권은 매입확약을 제공했는데, 만일 차주인 시행사가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유진투자증권이 300억원어치의 ABSTB를 인수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2일 선순위대출의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월성산단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주단 협의체가 9월 4일까지 상환을 유예했지만 그때까지 또 돈을 갚지 못했고 시공사인 태왕이앤씨가 1700억원 규모의 채무를 인수했다. 문제는 태왕이앤씨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EOD를 선언하면 사업장을 경공매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령 월성산업단지 사업장에서 발생한 1700억원의 채무까지 합치면 태왕이앤씨의 우발채무 규모는 2700억원가량인데, 이는 연말 자기자본 1854억원을 훨씬 웃돈다. 김웅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태왕이앤씨 신용등급 리포트를 통해 "고령월성산업단지를 포함해 부실현장 관련 우발채무만 대상으로 산정할 경우에도 자기자본을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OD 선언시 선순위 채권자에 빌린 자금부터 우선 갚기 때문에 중후순위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못받아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즉 매입확약을 맺은 유진투자증권 입장에서는 대출해준 300억원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새마을금고 등 선순위 대주단이 만기 연장에 찬성하면서 만기를 2026년까지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EOD 선언은 취소됐고 유진투자증권은 300억원 한도의 대출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형증권사들이 만기 연장으로 일단 숨을 돌리고 있지만, 이들이 대출 보증을 선 사업장의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유안타증권은 2020년 9월 전라남도 광양시 공동주택 사업에 대해 PF 대출(142억원 한도) 주관사로 참여했는데, 현재 이 사업장은 미분양으로 채무 회수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공사는 2022년, 2023년에 걸쳐 178억원의 대손상각비로 인식해놨다.
교보증권이 2020년 12월 120억원 한도의 PF 대출을 주관한 경기도 안양시 디오르나인 주상복합 개발 건도 현재 저조한 분양률로 애를 먹고 있다.부실 가능성 높은 사업장만 25%, 커지는 위기감
시장에서는 앞으로 중형증권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 사업장 평가 결과 '유의' 혹은 '부실우려'로 분류될 경우 용도변경 등 재구조화나 경공매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후순위 대출을 주관한 중형사들의 자금 회수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
금융당국은 PF 연착륙 조치의 일환으로 브릿지론과 본 PF 사업장을 △양호 △보통 △유의 △부실우려 4단계로 재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말 발표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증권업계의 PF 익스포져(PF성 대출집행+채무보증 한도)는 총 26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4조6000억원을 대상으로 1차 평가를 실시한 결과, 유의 단계로 판정받은 사업장이 1조4000억원, 부실우려 단계로 나온 사업장이 1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대한 한국기업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대형증권사의 PF 익스포져 중 유의·부실우려 비중은 11%로 가장 낮다. 반면 자기자본 1조~4조원인 중형증권사는 25%, 자기자본 1조원 미만의 소형사는 23%로 추정된다. 이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주관한 PF 중 지방 브릿지론 비중이 대형사 대비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형사와 다르게 PF를 대체할 다른 먹거리를 찾지 못한 점도 신용도 압박을 키우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자기자본 1조원 미만 소형사와 함께 BNK투자증권, 아이엠증권, IBK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현대차증권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증권사들은 수익원에서 부동산금융 비중이 높고 총자산수익률(ROA)이 0.5%를 밑도는 곳들이다. ROA는 보유한 자산으로 순이익을 얼마나 창출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과거 대비 저하된 PF 환경 속에서 부동산금융 외 다른 사업부문으로의 다변화 역시 녹록지않은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수익창출력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라며 "부동산금융 의존도가 높은 증권사일수록, 수익효율성 저하가 지속되는 증권사일수록 신용도에 미치는 부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