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이 부족할 때면 해법 중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가 나오곤 하는데요. 땅이 부족한 서울 등 수도권에서 주택 공급을 하려면 개발제한구역을 푸는 게 가장 빠르다는 이유에서요.
'스피드 주택공급'을 내세운 새 정부도 고민이 많을듯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재건축·재개발을 풀자니 집값에 불이 붙을 것 같고 그렇다고 점점 줄어드는 그린벨트를 또 풀자니 녹지 문제가 걸리고요. 그런데 그린벨트를 풀면 주택공급 '만사 OK'이긴 할까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린벨트의 운명은
그린벨트(GB·개발제한구역)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고 도시 주변의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하는 구역입니다.
지난 1971년 산업화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녹지 면적을 보존하기 위해 도입돼 전국에서 총 5397㎢가 그린벨트로 묶였는데요. 이후 점차 축소되면서 지난해 기준 3793㎢(e-나라지표 시스템 통계)로 초기 지정 면적의 70% 수준까지 줄었습니다.
주로 '주택공급 확대'라는 명분 하에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린벨트가 점점 풀려왔는데요. 그린벨트 해제가 대선이나 지선 때마다 나오는 단골 공약 중 하나가 될 정도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그린벨트 전면 해제'를 공약으로 내건 게 시작이었는데요. 당시 김대중 정부는 중소도시권을 포함해 최초이자 대규모(781㎢)로 그린벨트를 풀었고요.
노무현 정부는 은평구 등 그린벨트 654㎢를 해제해 은평타운을 조성, 1만4000여 가구를 공급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약대로 임기 첫 해인 2009년 수도권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서울 내곡동·세곡동 등에 그린벨트 88㎢를 해제해 아파트 1만7199가구를 공급했고요.
박근혜 정부 때는 지역개발사업을 중심으로 21㎢ 소폭 해제했는데요. 다만 면적 30만㎡ 이하의 경우 해제권한을 지자체장에게 위임하는 등 규제완화를 추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3기 신도시 개발과 함께 30㎢ 안팎 수준의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 중입니다.
이번 대선 때도 그린벨트 해제 공약이 어김없이 등장했는데요.
그린벨트 해제를 주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쪽으로 무게추가 쏠렸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당선 후 재건축을 중심으로 집값이 뛰자 다시 그린벨트 해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신도시를 비롯한 공공택지 개발로 142만 가구(수도권 74만 가구)를 공급하려면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죠. 시장에선 새 정부가 강남권 남부 등의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인수위는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 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여지를 남기면서 기대감에 불을 지폈습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개발제한구역은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국민 모두가 편익을 누릴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와 보전이 필요하다"면서도 "장관으로 취임하게 된다면 개발제한구역 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하게 해제가 필요한 경우에도 지자체 및 관계 전문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재건축은 막고 그린벨트는 푼다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나옵니다. 그린벨트만 풀면 주택 공급 문제가 모두 해소될까요?
그린벨트 해제를 활용하면 빠르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강점입니다. 재건축·재개발처럼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이주하고 다시 짓는 과정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공급이 빠르고요. 정부 주도 하의 공급이라 공공주택 등으로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죠.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해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을 대량 공급하면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요.
현재 거론되는 해제 후보지는 강남·서초 등지로 그린벨트가 어느 정도 훼손돼 녹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들이라 '녹지 훼손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초구 그린벨트 내 취락지구로 지정된 양재동 식유촌마을, 송동마을, 내곡동 탑 섬마을, 가구 단지 일대, 서초 예비군훈련장, 세곡동 자동차 면허시험장 등이 해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실제 해제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됩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차 때문인데요. 그동안 정부는 계속해서 '해제'를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불가'를 주장해 왔거든요.
문재인 정부에서도 2018년과 2020년에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서울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를 제안했지만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반대했고요. 오세훈 시장 역시 지난 1월 '그린벨트 해제론'에 대해 "자체적으로 훼손된 그린벨트 지역이 얼마나 남았는지 조사했더니 거의 없었다"며 가능성을 일축했죠.
다만 대표적인 해제 대상지로 거론되는 서초구(2388만㎡), 강남(609만㎡) 등은 모두 30만㎡을 초과해 오 시장에게 직접적인 해제 권한이 없는데요. 그래도 서울시장이 강하게 반대한다면 정책 추진이 원활히 이뤄지긴 쉽지 않겠죠.
더군다나 그린벨트 해제를 해도 집값 안정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풀 수 있는 그린벨트는 한정적이라 결국 충분한 주택공급을 위해선 윤 당선인이 공약한 대로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더 효과적이라는 거죠.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린벨트 지역 중에서도 비닐하우스, 공장 등으로 훼손이 돼 있는 지역의 경우 유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일부 완화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풀 수 있는 훼손된 녹지가 많지 않고 그린벨트의 당초 취지처럼 녹지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앞으로 인구·가구수 축소가 예상되는 만큼 도심 외연 확장 보다는 도심에 압축적인 개발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는데요.
이를 위해선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도심 내 개발을 위해선 저개발지를 밀도 높게 개발해야 하는데 국공유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결국 정비사업 규제 완화 말고는 주택공급 방법이 없다"며 "서울시에서 그동안 뉴타운 해제 등 수년간 개발을 막아왔기 때문에 규제를 풀면 집값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