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직원의 숙명이랄까요, 하하…"
매년 이맘때쯤이면 공기업 직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입니다.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경영평가편람에 따라 교수·회계사·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전년도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것인데요. 평가 점수에 따라 △탁월(S) △우수(A) △양호(B) △보통(C) △미흡(D) △아주미흡(E) 등 5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등급이 중요한가?' 싶지만 사실 이것, 직원 개개인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지표입니다. 바로 '성과급 지급' 여부가 좌우되는 지표이기 때문이죠. 공공기관 성과급은 경영평가 등급이 C 이상인 기관을 대상으로 차등 지급됩니다. 즉 C등급보다 낮은 D·E등급 기관 직원들은 성과급을 받을 수 없는 거죠. 이는 곧 직원들의 사기와도 직결됩니다.
올해는 재무 실적, 생산성 등 기관 운영 효율성과 사회적 책임 등 공공성을 균형 있게 평가했다고 기재부는 밝혔습니다. 특히 물가·주거안정, 투자 확대 등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이행한 기관에 대해서는 가점을 부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총 87개 평가 대상 공기업 중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은 공기업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부동산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주택도시보증공사(HUG) △SR 등 9곳과 준정부기관 △국가철도공단(KR) △한국국토정보공사(LX) △한국교통안전공단(TS) △국토안전관리원 4곳 등 총 13곳입니다.
TS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A등급을 달성했습니다. B등급에는 한국도로공사가 2년 연속 오른 가운데 국가철도공단과 LH가 포함됐습니다. 한국부동산원과 인천국제공항공사, 국토안전관리원, 한국공항공사, LX, 코레일이 C등급을 받았고요. 미흡에 해당하는 D등급에는 JDC, SR, HUG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보증 여파에 적자 '눈덩이' HUG
이 중 눈에 띄는 건 HUG와 SR입니다. HUG는 지난 2023·2024년에 이어 3년 연속 D등급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2023년 6월 부임한 유병태 사장이 '해임 건의' 대상이 됐는데요.
기재부에 따르면 2년 연속 D등급을 받은 기관 중 재임기간 요건(연말 기준 1년 이상 재임)을 충족하는 기관장에 대해서는 해임 건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HUG는 2023~2024년 모두 D등급을 받았으나, 지난해의 경우 유병태 사장이 재임기간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해임 건의 대상에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재임기간 요건까지 갖추면서 인사 조치를 피할 수 없게 됐죠.
HUG가 3년 연속 경영평가 D등급을 받은 결정적 요인은 '실적 악화'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HUG 영업이익은 2021년 4940억원에서 2022년 –242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습니다. 이후 2023년 –3조9962억원으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하며 완전히 곤두박질쳤죠. 지난해 소폭 개선되긴 했으나 –2조1924억원으로 여전히 손실이 큰 상황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난 2022년부터 본격화한 '전세사기' 사태가 직격타였습니다. HUG는 전세보증금을 떼인 사람들에게 이를 대위변제해주고,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세사기 사태를 거치면서 규모가 급증한 것이죠. 대위변제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대폭 적자가 불가피했습니다.
HUG는 이번 경영평가 과정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등 공공에 기여한 점을 적극 피력했으나, 대규모 적자로 인한 계량부문 점수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임 건의 대상이 된 유병태 사장은 현재 사의를 표명한 상태입니다.
흑자 이어왔지만…비계량 감점에 SR 'D등급'
3년 연속 어려움을 겪은 HUG와 달리, SR은 올해 부침을 겪은 케이스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C등급으로 평균 수준을 유지했던 SR은 올해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성적이 한 계단 하락했습니다.
HUG처럼 실적이 문제였나 싶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SR은 2020년 –233억원, 2021년 –172억원으로 영업손실을 이어오다 2022년 영업이익 141억원, 2023년 13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지난해에도 94억원으로 이익 규모가 다소 쪼그라들기는 했으나 흑자를 유지했죠.
SR의 경우 오히려 HUG와 반대로 비계량부문 점수가 등급 등락 여부를 갈랐다는 분석입니다. SR은 국정과제 이행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는 부문에서 예상보다 낮은 점수(2점 만점에 0.8점)를 받아 등급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등급 하락이 다소 예상 밖이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동안 공기업으로서 정부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온 직원들 입장에서도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SR 한 관계자는 "직원들 모두 조금이라도 점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를 접하고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조차 아쉬워할 틈도 없이 이들은 곧바로 내년 경영평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매년 계속되는 평가인 만큼 일희일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내년은 올해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HUG 관계자는 "그간 실적 악화 원인이 경영상 문제라기보다는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시기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올해 결산에서는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어서 경영평가 등급도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적 개선·정책 기여…LH, 2년 연속 등급 '껑충'
이번 경영평가 결과에 '비(悲)'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직원들의 '투기 사태' 여파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D등급에 머물렀던 LH는 지난해 C등급에 이어 올해 B등급으로 2년 연속 등급이 상향됐습니다.
LH의 경우 계량·비계량부문 모두에서 고르게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등급 상승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알리오에 따르면 LH는 지난해 매출액 15조5722억원으로 전년(13조8839억원) 대비 12.2% 증가했습니다. 특히 영업이익은 2023년 436억원에서 지난해 3403억원으로 2967억원, 무려 680.5%가 늘었습니다. ▷관련기사: LH, 영업익 7배 늘었지만…"160조 부채 관리 필요"(4월14일)
[단독]LH, 올해 채권 15조 찍는다…예산도 24% 늘려(2월7일)
정부 주택정책에도 충실히 기여하며 성과를 창출했습니다. 직전 연도 10배 규모에 해당하는 신축 매입임대 3만9000가구 약정을 체결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6000가구 사업승인, 5만 가구 착공 등 건설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한준 사장을 중심으로 경영 전략과 핵심 가치를 개편하고 정책 성과 달성을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인 점도 주효했습니다. 청년 고용 창출 및 재정 집행 활성화 등 성과를 인정받아 비계량부문 점수가 오르면서 등급 상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침체돼 있던 직원들의 사기가 고취된 점이 가장 고무적입니다. LH 관계자는 "그간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부여받으면서 아무래도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2년 연속 등급이 상승하면서 공공기관으로서 기여한 부분을 정부에서도 인정해 준 것 같아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