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 공식처럼 여겨지던 '빚내서 집 사기'의 문턱을 높였다. 상환 능력에 맞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록 유도한 정책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전세 대출도 제한하면서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이른바 '갭투자' 여건 역시 나빠질 전망이다. 서울과 수도권 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탓에 최근 분양가가 오른 청약 시장에는 잔금 납부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잔금을 현금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는 수요자만 청약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현금 장벽' 높아진 청약
정부는 지난 6월27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택구입 목적의 주담대 총액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했다. 다만 중도금 대출은 이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관련기사: 이재명 정부 첫 집값 대책은 '초유의 대출 옥죄기'(6월27일)
중도금 대출은 주담대가 아니다. 중도금 대출은 시행사와 금융회사가 사업장별로 체결한 계약을 통해 집단대출 형태로 이뤄진다. 이후 잔금 납부 시점에서 주담대를 개인이 받는다.
입주자모집공고에 따라 분양가 납부 방식은 다르나 분양대금의 10%를 계약금, 60%를 중도금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이후 입주 시점에서 30%를 잔금으로 내는 식이다.
그러나 중도금 대출을 받은 후 잔금 납부 시점에서 주담대를 통해 이를 상환하려 한다면,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된다. 청약 수요자들은 중도금 대출 단계에서부터 잔금 납부 대출 한도를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기준 적용 대상은 이달 28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를 낸 단지다. 서울 영등포구에 짓는 '리버센트 푸르지오 위브'(영등포 1-13구역 재개발)와 성동구에 들어서는 '오티에르 포레'(장미아파트 재건축)는 각각 27일과 26일에 입주자모집공고를 내 주담대 최대 한도 6억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이달 분양을 예고한 송파구 '잠실르엘'(미성크로바 재건축)은 아직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오지 않아 주담대가 6억원으로 제한될 전망이다. 잠실 르엘의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2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담대를 최대한 받아도 14억원의 현금 여력이 있어야 한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 랩장은 "6.27 대책으로 자금조달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가 많을 듯하고, 상대적으로 분양가 높은 단지에서는 당첨을 포기하거나 계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향후 청약 시장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갭투자 안돼"…무너진 '영끌' 공식
정부는 아울러 그동안 은행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수도권과 규제지역에는 전면금지했다. 또 주담대를 받은 모든 차주가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해당 주택에 전입하도록 했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날에 해당 주택의 소유권이 바뀌는 조건으로 이뤄지는 대출이다. 집주인은 세입자의 전세자금 대출을 잔금 납부에 활용해 왔다. 가령 A아파트의 분양 가격이 20억원, 전세 시세가 12억원이라면 대출 등을 활용해 8억원의 자기 자본을 만들어 청약 시장을 노릴 수 있었다.
기존에 통용된 갭투자 등의 방식을 이용 못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겠으나 이 같은 고리를 언젠가는 끊어야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일관된 방향성으로 주택가격을 안정화하면서 무리한 대출로 빚을 갚느라 경제활동이 어려워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부동산리서치랩 랩장은 "그동안 청약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방식은 규제로 상당 부분 막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전세 보증금이 상당한 무주택자, 대출을 적게 받거나 안 받아서 입주 잔금을 치를 수 있는 이들이 청약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면서 "기존에는 자신의 청약 가점이나 경쟁률, 분양가 적정성 등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수요자 본인의 재산 여건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만의 서울' 안 되려면…"공급 대책 나와야"
한국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평(3.3㎡)당 아파트 가격은 전용 60㎡초과~85㎡ 이하 기준으로 4643만원이다. 이를 25평으로 환산하면 11억6075만원이다. 평균 분양가를 놓고 보면 서울 신축 아파트 청약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담대를 최대한 받아도 6억원 가량의 현금이 더 필요한 셈이다.
특히 지난해 서울에 사용된 청약통장 60만6976건 중에 70.6%(42만8416건)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쓰였다. 지난해 강남3구에서 일반분양한 가구 수는 1480가구(8개 단지)로 평균 청약 경쟁률이 289.47대 1이었던 셈이다. 청약 시장에서도 상급지에 대한 선호가 강하지만 대출 규제로 '현금 부자'가 아니라면 진입조차 버거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의 김인만 소장은 "정책을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겠지만 주거 선호 지역의 공급이 부족한 만큼 주요 입지에 대한 청약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수요를 강하게 억누르는 정책에 자산가들은 크게 상관없지만 자산 여력이 없는 이들은 청약 시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수요 억제 외에도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이상경 신임 국토교통부 1차관도 지난달 30일 취임사를 통해 "실수요자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강력한 대출 규제는 청약 시장에서 서울 핵심지가 아닌 곳의 분양가를 낮추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청약 진입 장벽을 높였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빠르게 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