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향후 50년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윤곽은 잡았다. 새 밑그림의 특징은 종전보다 비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비전이 동(動)적인 것 중심이었다면 이번 비전은 정(靜)적이다. 숫자를 통한 목표달성 보다 가치를 앞세웠다.
롯데 비전의 변화는 롯데가 처한 현실과 연관이 있다.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다보니 그룹 안팎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롯데를 둘러싼 좋지 않은 상황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성과에만 집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 가시적 '성과'보다 무형의 '가치'에 방점
롯데가 이번에 내놓은 새로운 비전은 단순히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보여주기식 비전 제시가 아니라는 평가다. 롯데는 최근 2년여간 창사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이로인해 촉발된 총수일가 재판, 중국의 사드 보복, 최순실게이트 연루 등 안팎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나 위기를 맞기 마련이지만 유독 왜 롯데에게는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는지 또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내부고민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이 롯데가 새 비전을 고민하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롯데의 새 비전은 통렬한 자기반성의 산물인 셈이다.
▲ 롯데 뉴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사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롯데는 이번 새 비전을 발표하면서 유독 '가치', '창조', 신뢰'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과거 '2019년까지 매출 200조를 달성해 아시아 톱10 기업이 되겠다'와 같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 제시가 아니었다. 이는 롯데가 외형적으로는 계속 성장했지만 내용적인 측면은 부족했고 이런 기형적인 성장이 결국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이 "최근 깊은 성찰을 통해 기업의 목표는 매출성장과 이익확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롯데라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있다는 것을 통감했다"고 말한 것도, 임병연 롯데그룹 가치경영팀장이 "앞으로 비전은 숫자상 목표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반성의 결과다.
◇ 장기적이고 넓은 시각으로 본다
롯데는 숫자목표를 버리는 대신 과거에 비해 넓은 의미의 비전을 제시했다. 성장목표는 해당산업의 성장률을 상회하는 성장률을 가져가는 것으로 바꿨다. 사업 하나하나에 목표를 잡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기 보다는 한발짝 떨어져 넓은 시선으로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의미다.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서도 종전과는 관점을 달리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 등에 집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주와 채권자가 기대하고 있는 수익률을 뛰어 넘을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수익'의 개념을 넓게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사회적가치에 대한 개념도 비교적 명확히 정의했다. 종전과 같이 막연하게 '사회에 도움을 주는 기업가치 창출'이 아닌, 협력사를 포함해 국내에서만 2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만큼 협력업체와 건강하게 협업할 수 있는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눈에 띄는 점은 비전 달성을 위한 경영방침에 '가치경영'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임병연 팀장도 "가치경영은 이번에 처음으로 선정된 항목"이라고 할만큼 롯데가 관심을 두는 분야다. 롯데가 내세운 '가치경영'은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고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근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투명경영의 밑바탕을 다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 평가는 확실히, 사업확장은 사업특성에 맞게
롯데는 비전 제시와 함께 이에 대한 평가도 과거에 비해 더욱 정밀하고 정확하게 하기로 했다. 핵심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상반기까지 그룹 내부 인사혁신팀에서 작성, 완료하기로했다. 또 비전에 근거한 평가는 향후 몇달간 각 BU와 계열사간의 성과를 분석해 상반기중 관리지표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사업확장도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해나가기로 했다. 현재 그룹 매출의 40%에 달하는 유통사업 상황이 녹록지 않은만큼 여타 사업군의 역량을 해당 산업에 맞게 조정해 전략적으로 공략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글로벌사업 확장의 첨병 역할을 했던 식품사업은 더 현지밀착형으로 특화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업확장 능력을 배가할 계획이다. 화학사업은 범용보다는 전문 제품으로, 서비스는 호텔 등 접객 부문을 강화키로 했다.
▲ 롯데케미칼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 화학단지 준공 모습. |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중국사업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황 사장은 "현실적으로 중국이 어떤 속내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에 대해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중국사업은 아직 투자단계라고 판단하고 있어 현재 시점에서는 중국에 투자하고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의 화두인 지주사 전환에 대해서는 "지난 1월 공시된 내용대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호텔롯데 상장과 관련해서는 "중국 사드 영향으로 호텔롯데의 주력 사업인 면세점사업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면세점 사업이 궤도에 올라야하는데 현재로서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빠른 시일내에 호텔롯데를 상장한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