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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바이오 회계①블랙홀 속으로

  • 2018.05.03(목) 17:51

졸속 도입한 K-IFRS가 혼란의 단초 제공
금감원의 오락가락 해석 불확실성 '증폭'

제약·바이오 업계가 회계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업계 대장 격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랐고, 대표 바이오 기업의 하나로 꼽히는 차바이오텍도 회계감사에서 한정 의견을 받으면서 주식시장에서 관리종목으로 추락했다. 

문제는 제대로 된 회계기준을 제시해야 할 금융감독원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면서 혼란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선 1년 반 전 결정을 뒤집었고, 차바이텍도 제시된 기준을 따랐지만 뒤통수를 맞았다.

금감원이 섣불리 도입한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이 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금감원, 1년 반만에 정반대 결론

금감원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직전인 2015년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면서 제재 절차에 회부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반 전 금감원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금감원은 2016년 10월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위탁 감리를 맡겨 '적정의견'을 수용했다. 같은 해 12월엔 참여연대의 질의에 직접 '문제 없음'으로 회신하기도 했다. 삼일과 삼정, 안진 등 '빅4 회계법인' 중 3곳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과 주요 회계법인은 당시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기업회계기준서 제1110호(연결재무제표) B23 조항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K-IFRS B23항은 자회사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판단할 때 잠재적 의결권을 보유한 당사자가 이를 실제로 행사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파트너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연결자회사가 아닌 지분법상 관계회사로 분류한 것에 문제가 없다고 공인한 근거였다. 

졸속 도입한 K-IFRS가 단초 제공

그랬던 금감원이 뒤늦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91.2% 가지고 있었던 만큼 지분법상 관계회사로 분류한 것은 분식회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IFRS B23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같은 조항의 해석을 두고 1년여만에 정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셈이다.

이런 다툼은 금감원이 IFRS를 졸속 도입하면서 예고된 결과다. 금감원은 2006년 2월 IFRS 도입준비단을 구성하고, 그해 말 K-IFRS를 제정 공표했다. 불과 1년 사이에 국내 회계기준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K-IFRS는 2009년 희망기업에 이어 2011년 모든 상장사가 전면 도입했다.

IFRS는 회계처리 시 기업의 재량권을 상당부분 인정하는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이다. 태생적으로 모호성을 수반하고 있어 당시에도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K-IFRS 도입이 무리수라는 우려가 많았다.

금감원은 당시 국제 수준의 회계 투명성을 도입 취지로 내세웠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는 여전히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금감원이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한국채택 회계기준을 서둘러 도입하면서 혼란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K-IFRS를 전면 도입한 지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내 회계 투명성 수준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집계한 회계 투명성 순위를 보면 한국은 63개국 중 63위로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 금감원, 오락가락 해석 혼란 부추겨

금감원의 섣부른 IFRS 도입은 결국 자가당착의 결과를 낳았다. 국제 수준의 회계 투명성이라는 목표 달성은 실패로 돌아갔고, 제약·바이오 업계를 중심으로 회계처리를 놓고 불확실성만 커졌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를 두고 소송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감원이 테마감리를 예고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문제 역시 뜨거운 감자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논란 역시 IFRS의 모호성 때문에 빚어졌다. K-IFRS는 원칙적으로 개발 진행단계에 따라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뚜렷한 기준이 없는 탓에 연구개발비의 자산처리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차바이오텍이 당장 지난해 실적 감사에서 한정 의견을 받았고, 셀트리온 역시 수차례 회계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가가 휘청했다.

선진 회계기준 도입 자체는 국제 수준에 발을 맞추기 위한 과정이지만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얘기다. 금감원이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큰 회계기준을 두고, 정부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을 달리하면서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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