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커머스 플랫폼이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배송 전쟁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배달대행 업계는 투자받은 자금을 활용해 물류망을 확충하는 등 신사업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과 배달대행 스타트업 사이의 시너지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마이크로풀필먼트'를 잡아라
GS홈쇼핑은 지난 20일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와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GS홈쇼핑은 한세실업, 예스24와 함께 메쉬코리아의 기존 주주였던 휴맥스의 지분 19.53%를 인수했다. 이번 계약으로 GS홈쇼핑은 20.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네이버에 이어 메쉬코리아의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총 투자금액은 1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대기업의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메쉬코리아는 이번 투자에 앞서 지난해 네이버, 현대자동차와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바로고'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와 11번가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생각대로'를 운영하는 인성데이타는 지난해 11월 네이버에게 4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마이크로풀필먼트' 배송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마이크로풀필먼트는 배송을 위해 도심 내 비교적 작은 규모의 매장을 풀필먼트 센터로 가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매장 내 일정 공간을 물류센터로 활용하고 온라인 주문 상품의 근거리‧즉시 배송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마이크로풀필먼트는 영국의 테스코가 '다크 스토어', 미국의 타깃이 '타깃 플로우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CJ올리브영이 이와 유사한 '오늘드림' 서비스를 2018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오늘드림은 온라인 주문 상품을 배송지 인근 올리브영 점포로 당일 배송하는 서비스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근거리 배송 수요가 늘며 주문량 기준 전년 대비 10배 성장했다.
SSG닷컴, 롯데ON, 마켓포 등 국내 대기업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마이크로풀필먼트에 주목하고 있다. 전국에 오프라인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는 만큼 굳이 별도의 풀필먼트 물류센터를 세울 필요가 없다. 새로운 물류센터 건립에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마이크로풀필먼트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마이크로풀필먼트 시스템을 원활히 구동하려면 정형화되지 않은 연속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배송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를 배달대행 스타트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배달 시장의 급성장도 마이크로풀필먼트에 집중하는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17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78.6% 늘었다. 쿠팡이츠를 시작으로 한 번에 한 집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 니즈도 확대되고 있어 라이더(배달원)는 늘 부족하다. 그런 만큼 근거리 배송을 계획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많은 라이더 확보를 위해 배달 대행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 시너지 기대감 높아…투자 이어질 듯
업계에서는 배달대행 스타트업과 대기업 이커머스 플랫폼의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배달대행 스타트업은 투자 자금을 활용해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대기업 이커머스 플랫폼은 협업을 통해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양측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다. 앞으로도 이와 관련된 추가 투자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배달대행 스타트업들은 최근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메쉬코리아는 지난해 말 김포, 남양주에 풀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8264㎡(25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열었다. 이달 초에는 서울 강남에 첫 번째 도심물류센터도 오픈했다. 이를 통해 신선식품 배송 주문에 대응하고 종합 물류기업으로의 변신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바로고는 최근 배달 빅데이터를 활용해 입점 점주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 사업과 이륜차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향후 중소 프랜차이즈 기업과도 협업할 계획이다. 생각대로는 인성데이타의 사륜차 인프라와 연계해 B2B(기업간거래)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대기업과 협력한다면 신사업 투자 여력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은 배달대행 스타트업과 협력해 이커머스 플랫폼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달대행업과 같은 인력집약적 서비스는 단기간에 구축하기 어렵다. 인력을 확보하더라도 근거리 배송망 운영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에 추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부담이 적다.
장기 전략 마련에도 유용하다. 배달대행 스타트업은 근거리 배송 주요 소비자에 대한 빅데이터를 이미 구축하고 있다. 대기업 이커머스 플랫폼은 이를 활용해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고 고객을 '록인(Lock-in)' 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짤 수 있다. 또 물류 재고 운영 효율을 높여 플랫폼의 수익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근거리 배송은 한 기업이 인프라를 처음부터 구축하기 쉽지 않은 분야이며 인력 고용 등 문제로 부담도 커 대기업 입장에서는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더 효율적"이라면서 "물류 약점을 보완해 쿠팡의 풀필먼트 시스템에 맞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배달대행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