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 텔러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자취를 하고 있는 20대 대학생 K씨는 최근 들어 라면을 부쩍 자주 먹습니다. 수업이 죄다 온라인이라 집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습니다. 밥을 해먹자니 설거지가 귀찮습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으로 놀러와 K씨와 함께 라면을 먹곤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 둘이 함께 끓여 먹는 라면은 맛이 없습니다. 라면 봉지에 써 있는 조리법에 맞춰 물을 2배 넣어 끓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밍밍합니다.
과거 라면 봉지에는 라면을 2개 이상 끓일 때 필요한 물의 양이 적혀있었습니다. 라면 1개를 끓일 때 필요한 물이 550㎖라면, 2개를 끓일 때는 880㎖, 3개를 끓일 때는 1400㎖ 식이었죠. 하지만 이런 표기는 언제부턴가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라면 여러 개를 끓일 때 필요한 물의 양은 정답이 없는 문제가 됐죠. 마땅한 설명이 없으니 논쟁(?)도 활발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끓이는 게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라면 봉지에서 여러 개를 조리하는 방법은 왜 사라진 걸까요. 농심에 물어봤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이 다양해져서 삭제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과거 라면은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와 가스레인지를 사용해 끓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리 조건이 비슷했죠. 가족 구성원이 많아 한 번에 끓이는 양도 많았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여러 개를 한 번에 조리하는 상황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가족의 인원이 자연스럽게 줄었습니다. 많아봐야 2개 정도만 한 번에 끓이게 됐죠. 조리 방법도 바뀌었습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인덕션'의 보급입니다. 인덕션은 가스레인지와 달리, 바닥만을 가열해 요리합니다. 인덕션의 화력을 넓은 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다양한 냄비들도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표준 조리법을 찾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농심 연구소 관계자는 "1인용 냄비는 어느정도 정량화된 사이즈라고 볼 수 있지만, 2~3인용으로 넘어가면 소비자가 사용하는 냄비의 크기가 제각각"이라며 "냄비 크기가 다른 만큼 화력도 달라서 표준 조리법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라면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맛있게 라면 2개를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은 뭘까요. 농심·오뚜기 등 라면 제조사에 문의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면 2개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냄비 2개로 표준 조리법에 맞춰 끓여 먹는 것"이라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가 라면용 냄비를 두 개씩 가지고 있는 건 아니죠.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끓여보기로 했습니다.
실험에는 직경 20cm, 깊이 12cm의 냄비를 사용했습니다. 화력은 총 9단짜리 인덕션에서 7단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용한 라면은 진라면 순한맛 6개입니다. 이 라면의 표준 조리법은 550㎖의 물로 4분간 끓이는 것입니다. 라면을 버리지 않기 위해 퇴근 후 친구 3명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 한 눈빛을 뒤로 한 채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물부터 끓여봤습니다. 팔팔 끓는 시점부터 4분간 물을 증발시켰습니다. 550㎖를 끓인 후 물의 양은 425㎖였습니다. 125㎖ 줄었습니다. 1100㎖를 같은 조건으로 끓여봤습니다. 130㎖가 증발됐습니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열이 가해지는 표면적이 같기 때문입니다. 라면을 실제로 끓여보면 어떨까요. 면발과 건더기를 체로 거르고 국물의 양만을 측정해 보니 275㎖였습니다. '425㎖-275㎖=150㎖'이니 면발과 건더기가 흡수한 물의 양이 약 150㎖ 수준인 셈입니다.
이번에는 라면 두 개를 1100㎖의 물로 끓여봤습니다. 중간에 국물이 조금 넘치기는 했지만, 만들어진 국물의 양은 700㎖였습니다. 2로 나누면 라면 1개당 국물의 양은 350㎖입니다. 표준조리법에 따라 끓인 것에 비해 30%가까이 많은 양입니다. 맛이 밍밍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2개를 끓였으니 국물의 양은 550㎖가 돼야 합니다.
'1100㎖:700㎖=x:550㎖'라는 비례식을 세워 적절한 물의 양을 추측해 봤습니다. 계산해 보니 x는 약 865㎖정도입니다. 직전 실험에서 끓어 넘친 물의 양을 고려해 총 950㎖의 물을 넣고 라면 2개를 다시 한 번 끓여봤습니다. 표준 조리법의 2배가 1100㎖였으니, 약 13.6%의 물을 덜 넣은 셈입니다.
완성된 라면 2개 국물의 양은 575㎖였습니다. 1개당 287.5㎖인 셈입니다. 1개를 조리했을 때에 비해 국물이 4%정도만 많았습니다. 세 번의 실험 끝에 목표 수치에 근접했습니다. 물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완성'에 가까워 질 수 있겠네요. 맛도 한 개를 끓였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만족스럽게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험 내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던 실험 참가자들의 의심은 이제 확신이 됐습니다.
라면 2개를 끓일 때 물의 양을 약간 줄여야 하는 것은 진라면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팔도가 만드는 틈새라면은 1개당 500㎖의 물로 3분 30초간 조리해야 합니다. 이 라면의 면발은 진라면에 비해 조금 얇아 조리 시간이 짧습니다. 이 틈새라면 두 개를 끓일 경우 물의 양은 1000㎖가 아닌 900㎖를 사용할 때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현주환 팔도 연구원은 "틈새라면 빨개떡을 농심라면을 두개 끓이는 기준으로 조리한다면 물 830㎖에 스프 1과 3분의 2개를 넣을 때 가장 맛있는 라면을 조리할 수 있는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실험의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면 2개를 끓일 때 물의 양은 한개를 끓일 때의 2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라면 한개의 면발과 건더기 소스가 흡수하는 양 만큼의 물만을 추가해도 안 됩니다. 분말 소스가 있기 때문에 너무 짭니다. 국물도 적어집니다. 인덕션과 일반적 라면 냄비를 사용해 라면 2개를 끓일 때는 표준 조리법의 2배에서 약 15%정도의 물을 덜어내면 됩니다. 그러면 1개를 끓일 때와 비슷한 맛의 라면 2개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실험은 같은 조건으로 조리할 때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만약 바닥의 표면적이 넓은 냄비를 사용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증발하는 물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더 강한 화력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라면 2개를 끓여보니 표준 조리법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더 맛있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구원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이번 기사는 대전에 계시는 독자 문영진 님께서 문의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문영진 님께는 감사의 선물로 커피 키프티콘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食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픈 콘텐츠입니다. 평소 음식과 식품, 약에 대해 궁금하셨던 부분들을 알려주세요. 그 중 기사 소재로 채택된 분께는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로 드립니다. 기사 아래 댓글이나 해당 기자 이메일로 연락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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