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 업체들이 줄줄이 진출하고 있는 '퀵커머스(즉시 배송)' 사업이 암초에 부딪힐 위기다. 퀵커머스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여부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최근 퀵커머스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착수했다. 규제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소상공인 단체는 B마트가 국내 퀵커머스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골목상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얼마 전 시장에 진출한 쿠팡이츠 마트에 대해서도 소상공인들이 '대책위'를 꾸리는 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에 대한 정치권 공세가 강화되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관련 업체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퀵커머스' 비판 목소리…정부, 연구 발주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퀵커머스가 골목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퀵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 산업 전반에 대한 분석이 이뤄질 예정이다. 내년 초 최종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상반기 중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퀵커머스 산업을 살펴보려 하는 건 여론과 정치권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다. 특히 최근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퀵커머스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 역시 규제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퀵커머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성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마트 매출액 급증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중소 상인의 피해 규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신영대 의원 역시 "B마트 출시 이후 슈퍼마켓과 편의점 이용 고객이 빠져나갔다"고 질책했다.
소상공인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B마트 서비스가 주목받자 "배민과 요기요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사업을 확장해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다"고 반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쿠팡이 운영하는 '쿠팡이츠 마트'를 겨냥한 단체도 만들어졌다. '쿠팡 시장침탈 저지 전국 자영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조만간 퀵커머스를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동반성장위원회에 요청할 계획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이 되면 대기업들은 3년간 해당 사업에 대해 인수와 개시, 확장 자제를 권고받거나 금지된다.
"중개 아닌 직접판매" 지적…"동네마트 연계 고민"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음식 배달 앱 업체(배달의 민족)인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2019년 'B마트'라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앱을 통해 생필품을 주문하면 1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방식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쿠팡을 비롯해 롯데와 신세계, GS리테일 등 대형 유통업체들 역시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퀵커머스 사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B마트나 쿠팡이츠 마트 등이 취급하는 품목이 기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주로 판매하는 생필품과 식료품 위주여서다. 기존 배달 앱 사업의 경우 자영업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방식이지만, 퀵커머스 서비스는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소상공인들은 퀵커머스 매출이 커지면서 인근 상권 소상공인 매출이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기존 수요를 잠식하는 게 아니라 신규 서비스를 창출하는 사업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편의점 매출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계속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어 B마트 서비스 출시가 시장 잠식으로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B마트는 비싼 배달비를 주고서라도 즉시 받고 싶어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향후 지역 소상공인들과 상생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도 보였다. 그는 "퀵커머스 사업 형태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물품을 사입해 직접 운영하는 이유도 있다"며 "소규모 동네 마트 등 업체들이 배민에 입점해 고객과 만나는 채널을 확장하는 걸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규제 움직임이 새로운 시장의 창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 업체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어 확장하고 있는 산업을 무작정 규제하겠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유통산업의 발전과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함께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