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 어떤 일이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요 며칠 CJ그룹의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떠오릅니다. 지난 3일 이재현 회장이 사내방송을 통해 2023 중기 비전을 발표했는데요. 미래 성장 동력으로 4개 분야를 선정하고 이 분야에 3년간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이 회장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업 비전을 설명한 것은 지난 2010년 '제2 도약 선언' 이후 처음입니다. 그만큼 이 회장의 강한 의지가 실린 행보인 셈입니다.
실제로 CJ그룹은 이 회장의 비전 선포 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계획을 쏟아냈습니다.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이 먼저 시동을 걸었습니다. 네덜란드 CDMO(바이오 위탁개발 생산) 업체인 바타비아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했습니다. 이 회장의 비전 발표 이후 불과 닷새만의 일입니다.
CJ대한통운도 나섰습니다. CJ대한통운은 오는 2023년까지 2조5000억원을 투자해 정보기술(IT) 기반 이커머스 물류 플랫폼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식자재 유통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도 새 미션과 비전을 내놨습니다. 국내 최고의 푸드 비즈니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CJ ENM의 경우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지형을 바꿀만한 '빅딜'로 평가됩니다. CJ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 사업 확대에 적합한 아이템입니다.
CJ그룹은 최근 몇 년간 너무 조용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CJ그룹은 지난 2018년 미국 냉동식품업체 슈완스를 2조원에 인수했습니다. CJ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 건이었죠. 그 탓에 재무구조가 악화돼 한동안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CJ그룹이 한동안 외형 확대보다는 체질 개선에 몰두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일사불란해지고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CJ그룹의 변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CJ그룹은 국내 식품업계 1위 기업입니다. 더불어 문화 사업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CJ그룹이 변화에 나섰다는 것은 그 판이 곧 바뀔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많은 경쟁 업체들이 긴장하는 이유입니다. CJ그룹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로 대부분 산업의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며 "이에 따라 CJ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최근 수 년간 CJ그룹의 실적은 정체돼있었습니다. 이미 변화의 필요성이 나타나고 있었던 셈입니다. CJ그룹은 당초 오는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CJ그룹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32조원가량입니다. 게다가 지난해의 경우 전년보다 되레 매출이 줄었습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한 시점인 겁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에 '제2의 도약'을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그 때도 그룹 전체가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CJ그룹의 CI가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도 이 회장의 '제2의 도약' 선언 이후입니다. 같은 해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등 그때도 과감한 변화를 선택해 효과를 봤습니다.
이 회장이 '제2의 도약'을 선언할 당시 CJ그룹의 매출 규모는 11조원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3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10여 년만에 3배 가량 성장했습니다. 물론 2020년 매출 100조원이라는 목표에는 못미쳤지만 과감한 변화를 통한 성장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CJ그룹이 분주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이 회장은 이번에는 매출액 목표를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투자의 방향과 규모를 제시했습니다. 현재를 '성장 정체기'로 규정하며 미래 대비에 부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룹 전체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CJ그룹은 이번에도 '레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요. CJ그룹의 향후 행보가 무척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