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군것질을 좋아합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습관처럼 새로 나온 스낵이나 초콜릿 등을 살펴보는 편입니다. 직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새 간식거리를 찾아내는 일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어 보면 가끔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늘 사던 익숙한 제품이 아닌 경우가 있어서입니다. 늘 롯데 카스타드를 사 먹었던 것 같은데 무심코 집어들었더니 오리온 로고가 달린 경우는 양반입니다. '꼬북칩'인 줄 알았더니 '거북칩'일 때도 있었습니다.
식품업계의 특성이 그렇습니다. 제품 레시피나 특성이 그 자체로는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름만 바꾸면 얼마든지 '똑같은' 제품을 내놔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이를 업계에서는 '미투 제품'이라고 부르죠.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국내 제조사들의 서로를 베끼고 베끼는 혈투를 다뤄 봅니다. 내가 그간 사랑했던 제품은 과연 원조였을까요 '미투'였을까요.
식상해 하실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리온의 초코파이 전쟁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1974년 오리온이 개발한 초코파이는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롯데 초코파이, 크라운 쵸코파이 등 수많은 미투 제품을 낳습니다.
이에 오리온은 1997년 소송을 제기합니다. 초코파이는 오리온 고유의 상표라는 거죠. 이에 롯데와 해태 등은 초코파이는 20년 넘게 다른 브랜드들도 같은 이름의 제품을 판매해 온 만큼 이미 보통명사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롯데와 해태의 손을 들어 줬죠. 초코파이가 상표로서의 식별력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당시 이 소송의 재판장이었던 박일환 전 대법관은 이 판결에 대해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상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경쟁사의 사용을 막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며 "스스로 권리 위에 잠을 자게 된 결과로 상표권을 상실하게 된 희귀한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여러 초코파이들을 구분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원조인 오리온은 80년대 말부터 차별화를 위해 '情(정)' 캠페인을 펼치며 제품명을 '오리온 초코파이 情'으로 바꿨습니다. 정 자가 있으면 오리온입니다. 크라운제과의 제품은 초코파이가 아니라 '쵸코파이'입니다. '쵸'도 아니고 '정'도 아니면 롯데 제품인 셈입니다.
원조와 미투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은 또 있습니다. 롯데제과의 대표 제품 빼빼로와 해태제과의 포키입니다. 빼빼로는 1983년 출시된 장수 과자입니다. 국내 과자 매출 1위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넘버원 과자'기도 합니다.
문제는 2013년 해태제과가 '포키'를 출시하면서입니다. 누가봐도 빼빼로와 똑닮은 이 과자는 일본 글리코사의 스테디셀러 제품을 정식 계약해 판매하는 제품인데요. 출시 초에는 '짝퉁 빼빼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리코사가 포키를 처음 출시한 건 1966년으로, 빼빼로보다 17년이 앞섭니다. 명백히 '포키'가 원조인 거죠.
해태제과는 포키를 출시하면서 연중 빼빼로 최대 대목인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스틱데이'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원조 여부를 떠나 우리네 기억 속에 '빼빼로'의 추억이 그만큼 선명했기 때문이겠죠.
그나마 여기까지는 딱 보면 분간이 가는 제품들입니다. 워낙 대표적인 미투 상품의 예시이기도 하고 제품들의 인지도 역시 업계 톱 수준이라 비슷한 게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모르고 사서 다 먹을 때까지도 모를 만큼 비슷한 제품들도 많습니다.
부드러운 빵 속에 달콤하고 노란 크림이 들어있는 '카스타드' 좋아하시나요? 이 카스타드는 롯데제과와 오리온에서 내놓고 있는데요. 카스타드는 롯데제과가 '원조'입니다. 일본 롯데에서 처음 출시된 제품을 국내 롯데제과에서도 내놨죠. 재미있는 건 오리온 카스타드의 경우 '계란을 듬뿍 넣었다'는 강조 문구가 있는데 정작 계란 함량은 원조인 롯데 카스타드가 더 높다는 점입니다.
카스타드와 비슷한 질감이지만 안에 과일 크림이 들어있는 게 특징인 '후레쉬베리'는 반대 케이스입니다. 오리온이 1990년 선보여 초코파이 등과 차별화된 식감과 맛으로 시장에 안착하자 이름도 똑같은 '후레쉬베리'로 출시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오리온은 Fresh Berry였던 반면 롯데 제품은 Fresh Very로 차별점을 뒀죠. 롯데 제품은 국내에선 단종됐고 인도에 '프루토 파이'라는 이름으로 리뉴얼돼 판매 중입니다.
2000년대엔 다시 롯데가 공격할 차례가 옵니다. 국내 껌 시장을 재편한 롯데제과 자일리톨을 모방한 오리온 '더 자일리톨' 때문이었죠. 2004년 한 차례 소송전을 치러 법원이 롯데의 손을 들어줬고 2016년에도 또 한 차례 부딪혔죠. 녹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디자인에 이름까지 한 글자 차이니, 헷갈릴 만합니다. 사실 전 아직까지도 두 제품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조금 더 복잡한 사례를 찾아 볼까요. 삼양식품의 스테디셀러 과자 '짱구'입니다. 삼양식품은 1973년 '짱구'라는 과자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2000년 크라운제과가 일본 만화 '짱구는 못말려(원제 크레용 신짱)'와 협업해 '못말리는 짱구'라는 과자를 출시하죠. 여기엔 우리가 아는 '짱구'의 얼굴도 들어 있었습니다.
삼양식품이 이를 두고볼 리 없었죠. 바로 상표권 소송에 들어갔고 크라운제과는 과자 이름을 '못말리는 신짱'으로 바꿉니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겠죠. 2008년 크레용 신짱의 캐릭터 사업권이 롯데제과로 넘어갑니다. 롯데제과는 재빨리 '크레용 신짱'이라는 과자를 내놓죠. 크라운제과는 '못말리는 신짱'이라는 제품명은 그대로 둔 채 포장지에서 짱구의 얼굴만 뺍니다.
당시 크라운제과는 짱구의 IP가 넘어간 것이 롯데제과의 물밑 작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롯데가 아무렇지도 않게 짱구 과자를 파는 것을 놔두지 못했죠. 바로 소송을 걸어 제품명에 '신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 때문에 롯데 제품은 '크레용 울트라 짱'으로 이름이 바뀌죠. 짱구의 몸값이 만만치 않았을까요. 롯데제과는 이후 해당 제품의 이름을 '웰빙곡물 울트라 짱'으로 바꾸며 짱구의 그림자를 지워냅니다.
그러던 2021년, '원조' 삼양식품이 모든 혼란을 정리합니다. 짱구 캐릭터와 정식으로 콜라보하며 원조와 원조가 만나게 된 거죠. 돌고돌아 결국 삼양식품이 '원조' 자리를 지켜낸 셈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밖에도 표절과 모방 사이에 위치한 무수히 많은 제품들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국내뿐만이 아니죠. 다음 생활의 발견에서는 해외로 눈을 돌려 우리가 '원조'라고 믿었던 과자들의 '미투' 역사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다음 생활의 발견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