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의점 CU 가맹점주들이 본사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습니다. 점주들은 CU 가맹본부가 가맹점들에 신상품 마케팅 비용을 전가하고 상품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흔하디 흔한 '갑질'인가 싶지만 조금 복잡합니다. 문제는, 점주들이 문제 삼은 부분을 본사에서는 '상생 정책'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갑질된 상생
CU가맹본부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오래 전부터 상품 발주와 판매 촉진을 위해 상품 발주 금액에 비례해 매월 6만원과 발주원가의 0.3%의 반품 폐기비용을 지원해왔습니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신상품 발주량과 반품·폐기 비용을 지원하는 '상생신상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신상품 발주량에 따라 월 최대 15만원과 폐기비용 월 최대 50만원 등을 지원하는 내용입니다.
상생신상제도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CU가맹점주협의회가 지난 8월 전국 CU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2.9%가 상생신상제도 만족도 평가에서 60점 이하를 줬습니다. 또 응답자의 77.7%가 상생신상제도를 신상품 밀어내기 또는 본부의 판매전략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더불어 점포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본사 직원과의 관계 때문에 발주를 하는 등 비정상적 판매를 하고 있다는 응답도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지원을 하는데 왜 가맹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냐고요?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CU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본사는 취급 상품 수를 대폭 늘리면서 신상품 중 80% 이상을 발주해야 지원금이 나오도록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발주비용이 증가했고 대부분의 점포들이 본사가 지원하는 폐기비용을 월 중순 이전에 소진한다고 합니다.
상생신상품의 상당수가 어떤 상권에서는 전혀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이어서 점주가 구매하거나 폐기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점주들은 호소합니다. 예를 들면 상생신상제품에 포함된 기저귀, 조리용 소스, 대용량 김치, 완구류 등은 주택가 상권 이외의 유흥상권, 오피스상권, 학교, 병원, 지하철 등 특수상권에서는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대해 본사와 점주들은 현재 상생신상품 도입 비율 구간을 낮추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점주들은 최고액(월 15만원)을 지원하는 발주율 기준을 80%에서 60%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BGF리테일은 7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진짜는 '전기료'
사실 가맹점주들은 상생신상제도의 개선보다는 '전기요금' 지원을 재개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전기료 등의 고정비가 급증해 매장 수익이 줄고 있는데, 작년부터 CU가가맹본부 전기요금 지원을 중단해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BGF리테일은 2018년부터 상생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지원하다가, 작년부터 전기료 대신 신상품 발주 및 반품·폐기 비용을 지원하는 '상생신상제도'를 도입했습니다.
BGF리테일은 전기료 등을 지원하는 것은 일회성 비용이기 때문에, 신상품·폐기 비용 지원이 가맹점들의 매출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합니다. BGF리테일 측은 "가맹계약과 별도로 단순 비용 지원 방식이 아닌 가맹점의 실질적인 수익성 향상을 돕는 상생안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2024년 상생안이 확정되면 개별 가맹점에 충분한 안내와 동의를 얻어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CU만 전체 전기료 지원을 중단한 건 아닙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2019년부터, 코리아세븐의 세븐일레븐은 올해부터 전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전기료 지원을 중단하고 24시간 운영 지원금 등의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연말이면 편의점 본사들은 가맹점 상생안을 발표합니다. 다른 업종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점포 수를 보유했느냐가 하나의 브랜드 경쟁력입니다. 점포 수가 많을수록 본사의 매출과 수익도 늘어나는데다 제조사와의 협상력도 달라집니다.
가맹점을 많이 모집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맹점을 얼마나 잘 지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본사와 가맹점의 계약은 통상 5년 기준으로 유지되는데요. 계약이 끝날 때마다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간판을 바꿔 다는 '편의점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사도 가맹점들의 의견을 묵살하기 어렵습니다. 매년 본사와 점주들이 대치하지만, 다른 업계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번 CU와 점주들의 대치도 의견 차를 좁혀가는 과정으로 봐야겠죠.
CU는 국내 편의점 업체 중 점포 수가 가장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CU의 상생안이 '시원찮을' 경우 경쟁 브랜드로 이탈할 수 있는 점포도 가장 많다는 의미입니다. 업계 1위 CU가 가맹점주들과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1위 자리를 지켜낼 지, 점주들의 불만을 재우지 못하고 '대이동'을 지켜보기만 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