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dn.bizwatch.co.kr/news/photo/2022/09/29/ae6aee475a2f8ac863169c2d0fa0ff9d.jpg)
롯데면세점의 결단
국내 면세업계 1위 롯데면세점이 중국 보따리상, 즉 '다이궁(代工)'과의 기업간거래(B2B)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이궁은 국내 면세점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한 후 중국 소매시장에 되파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한번에 구매하는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다이궁은 코로나19 이후 국내 면세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롯데면세점 매출에서 다이궁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합니다.
롯데면세점은 다이궁과의 거래 중단으로 매출 절반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롯데면세점의 수익성 확보 우선 전략은 사실 지난해부터 시행됐습니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6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다이궁 모집을 위한 송객수수료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또 국내 오프라인 영업점의 면적도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매출 감소를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최근 취임한 김동하 대표 역시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https://cdn.bizwatch.co.kr/news/photo/2024/12/02/064b92c19eb05784f3cfc58ab0ddbdb3.jpg)
대신 롯데면세점은 개별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다이궁 매출을 온전히 보전하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롯데면세점이 큰 손인 다이궁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송객수수료' 때문입니다. 송객수수료는 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말합니다. 그동안 국내 면세점들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 즉 '유커(游客)'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행사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해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내면서 중국인 단체 관광이 중단됐고 그때 유커를 대신했던 것이 다이궁입니다.
수익성 악화 주범
다이궁 중 일부는 개인 보따리상이지만 대부분은 여행사를 통해 모집되는 '기업형' 다이궁입니다. 면세점은 다이궁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에게 송객수수료를 줍니다. 유커의 수가 줄었으니 매출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다이궁을 불러야 했고 이는 송객수수료 경쟁으로 이어졌죠.
문제는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는 점입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면세점들은 고사 위기에 몰렸는데요. 이때 유일하게 면세점을 계속 찾은 것이 다이궁입니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면세점들은 다이궁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외에도 대규모 할인, 현금 환급(캐시백)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다이궁은 국내에서 더 싼 금액에 물건을 사들여야 이익을 남길 수 있겠죠. 당연히 혜택이 큰 면세점을 찾을 겁니다. 이 때문에 면세점이 다이궁에게 제공하는 각종 할인, 환급 혜택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다이궁이 구매하는 금액의 절반은 면세점에서 다이궁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면세점 사업구조가 상당히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전체 면세점의 송객수수료 규모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3년 국정감사 당시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들의 송객수수료 규모는 2020년 8626억원에서 2021년 3조8745억원까지 올랐습니다.
![](https://cdn.bizwatch.co.kr/news/photo/2024/02/27/e7da177c5ac1a17d05ac500bc89ef132.jpg)
송객수수료 규모는 2020년 면세점 전체 매출의 5.7%였으나 2021년에는 22.5%까지 확대됐습니다. 업계에서는 2022년 송객수수료 규모가 7조원까지 오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일 업계의 추산이 사실이라면 면세점 매출의 40% 가까이가 송객수수료로 빠져나간 셈입니다.
주요 면세점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다이궁 모집을 위한 송객수수료가 얼마나 수익성을 악화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는데요. 특히 2022년 영업손실은 1395억원에 달합니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역시 2022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98.3%, 83.8%나 줄었습니다.
이 때문에 관세청은 2022년 말부터 면세점들이 송객수수료를 인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2023년 면세점들의 수익성이 대부분 개선된 것도 송객수수료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송객수수료 감소로 다이궁의 발길도 줄었고 이는 매출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2023년에는 팬데믹 사태가 종료된 후임에도 국내 면세점의 연간 매출액은 전년보다 22.8% 줄어든 13조758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11월 면세점 매출 역시 12조9669억원으로 전년 대비 4.1% 늘어나는 데 그쳤죠.
비정상의 정상화
결국 다이궁의 손을 놓는다는 건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롯데면세점의 이번 다이궁 거래 중단 결정이 '결단'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롯데면세점의 이번 결정이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일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면세점들이 지난 2023년부터 송객수수료를 줄이며 일정 부분 효과를 봤죠.
다만 롯데면세점이 B2B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을 뿐 개인형 다이궁 거래를 멈춘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많은 다이궁들이 여행사를 통해 모집되지만 개인 자격으로 면세점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기업형 다이궁이라고 해서 특정 여행사에 소속된 것이 아닌 만큼 개인 자격으로 면세점에서 구매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다이궁과의 B2B 거래를 중단한다고 해서 매출의 50%를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따라서 수익성 개선 효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형 다이궁이 온라인에서 대량 구매를 할 경우 상당한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송객수수료 만큼 수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https://cdn.bizwatch.co.kr/news/photo/2020/05/18/MD2020051815184510_wmark.jpg)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다이궁과의 거래 중단이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매출의 50%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만큼 각 면세점의 '바잉 파워(buying power)'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면세점은 상품을 직매입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바잉 파워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각 브랜드들은 매출 규모가 더 큰 면세점에 더 많은 물량을 줍니다.
면세점에게 중요한 명품 브랜드들의 입점 여부도 이 바잉 파워에 달려 있습니다. 매출액이 면세점에게 중요한 지표인 것도, 롯데면세점이 한때 세계 1위를 목표로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롯데면세점이 갑자기 50%의 매출액을 포기한다면 그만큼 브랜드와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롯데면세점의 결단은 그만큼 '생존'을 향한 절박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비정상적으로 다이궁에 의존하던 구조를 정상적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롯데면세점의 이번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또 면세업계 판도는 어떻게 바뀔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