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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태국 방콕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수입용 라면' 코너가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은 수입용 라면 코너지만 사실상 'K라면 매대'나 다름없다. 가장 윗줄부터 '불닭볶음면'과 '신라면', '삼양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도 '신라면 똠얌', '치즈불닭볶음면', 삼양식품의 해외 전용 브랜드인 '탱글' 등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때 해외 마트나 편의점의 라면 코너를 점령했던 닛신이나 마루짱(토요스이산) 등 대표 일본 라면이 차지하던 자리를 K라면이 모두 빼앗아 온 셈이다.
K라면이 글로벌 입맛을 겨냥한 타깃 제품을 내세워 '라면 왕국' 일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기존 스테디셀러 라면에 다양한 배리에이션의 해외 전용 라인업을 더해 한국 라면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스탠다드
이제 K라면의 인기는 단순히 유행이 아니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해외에 거주 중인 교민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한국산 라면은 이제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불닭볶음면 챌린지로 시작된 K라면에 대한 관심이 다른 국내 라면 브랜드로도 이어지면서 웬만한 라면은 해외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다.
수출 증가세도 가파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9년 4억7000만달러였던 국내 라면 수출액은 2020년 6억달러, 2022년 7억달러를 돌파했고 지난해엔 전년 대비 30% 넘는 성장세를 기록하며 12억달러를 넘어섰다. 5년 만에 수출액이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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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1월 K라면의 해외 수출액은 전년 대비 25.3% 늘어난 1억750만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이런 추세가 연중 이어진다면 연말 수출액은 15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도 치솟고 있다. 농심은 이미 북미에서 인스턴트 라면 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이다. 시장 점유율이 20%를 웃돈다. 농심은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한 미국 2공장의 증설과 3공장 건립 등을 통해 2030년까지 미국 시장 매출 15억달러를 달성, 점유율 1위인 일본의 도요스이산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북미의 K라면 흥행을 이끈 삼양식품 역시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400억원을 들여 수출용 공장인 밀양 1공장을 세운 데 이어 1800억원을 들인 밀양 2공장도 올해 상반기 내 가동할 계획이다. 또 오는 2027년엔 중국 공장이 완공된다. 중국 수요를 책임질 중국 현지 공장이 완공되면 밀양 1, 2공장은 북미와 유럽,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물량을 담당한다.
한국엔 없는 K라면
특히 눈에 띄는 건 라면 기업들이 신라면이나 진라면, 짜파게티 등 국내에서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라면을 수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현지 맞춤형 라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다. 삼양식품은 중화권을 타깃으로 한 마라 불닭볶음면, 서양권을 겨냥한 콘 불닭볶음면, 일본 시장을 노린 야키소바 불닭볶음면, 동남아 시장용 똠얌 불닭볶음탕면 등 해외 수출 전용 라인업을 10여 가지 이상 운영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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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도 마찬가지다. 농심은 신라면의 수출용 제품의 매운맛을 줄여 왔다. 해외 소비자들이 신라면의 매운맛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외 소비자들이 'K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하며 매운맛을 강화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태국 등 동남아 시장을 노린 '신라면 슈퍼 스파이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 출시된 매운맛 신라면인 '신라면 더 레드'와 비슷한 콘셉트지만 국내보다 먼저 출시됐다.
이밖에도 농심은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로 유명세를 탄 태국의 미쉐린 1스타 셰프 '째파이(JAIFAI)'와 협업한 신라면 똠얌과 신라면 똠얌 볶음면을 현지 전용으로 출시했다. 일반적인 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7~10바트(약 400원) 안팎인 데 비해 몇 배 이상 비싼 65바트(약 2500원)임에도 700만봉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11월부터는 수출 국가를 14개국으로 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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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역시 러시아에서 '국민 라면' 지위를 얻은 도시락 라면을 현지화해 고추치킨맛, 김치맛, 새우맛, 버섯맛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오뚜기도 국내에선 일찌감치 단종된 '보들보들 치즈라면'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수출 전용으로 탈바꿈해 39개국에 선보이는 등 수출 전용 라인업을 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소비자와 국내 소비자 간 라면 취향이 다른 점을 고려해 K라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현지인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맞춤 제품을 내놓는 것"이라며 "외국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현지 전용 라면을 구매하거나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역차별' 이야기가 나올 만큼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