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점포 인근 조흥은행 점포 직원들과 회식도 엄청 했고, RM(기업금융담당자)들이 영업도 같이 나갔다. 아마 그때 먹었던 술이 평생 먹은 것에 상당 부분 차지할 거다. 합병 전에 온몸으로 부딪혔던 것 같다."(옛 신한 직원)
#"회의를 하러 신한은행 기흥연수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시설도 매우 좋고, 밥도 엄청 잘 나오더라. 조흥은행은 당시 연수원도 없었고, 쇠 식판에 찐밥 먹는 정도였는데 거기는 샤부샤부도 나오더라. 사소하지만 자주 만나면서 직원 복지가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옛 조흥 직원)
#"통합 후 옛 조흥 점포로 발령이 났는데 처음엔 아무래도 어색했다. 승진 체계상 같은 직급이라도 옛 조흥분들이 나이가 많았다. 좀 지나고선 형님 누나처럼 대하며 살았다. 통합 전 인근 점포 간에 문화행사나 회식을 자주 하면서 교감을 한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옛 신한 직원)
'조흥은행과의 합병은 3년 후에 한다.'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신한금융지주는 이 3년을 충분히 활용했다. 소위 말하는 화학적 통합, 감성통합에 올인했다. 잦은 스킨십으로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려 했다. 그 덕에 은행권에선 드물게 성공한 M&A 사례로 꼽힌다.
하나금융이 추진하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성공 여부도 결국 문화적 통합에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외환의 엘리트 의식 vs 하나의 정글 본능
"하나은행은 장돌뱅이 문화다. 여러 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수처럼 조그만 단자회사에서 시작해 발로 뛰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정글문화와도 같다. 반면 한국은행에서 떨어져 나온 외환은행은 엘리트 의식과 프라이드가 강하다. 문화적 차이가 확연하다. 하지만 그걸 융합해야 성공한다." 하나은행에 근무했던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과거 최고(最古)은행이자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의 제일 앞머리에 섰던 조흥은행의 자부심도 남달랐다. 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신한은행 또한 규모는 작지만 수익성과 효율성 좋은 은행으로 자존심이 있었다.
양 은행도 처음엔 섞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터. 하지만 3년의 기간 동안 좋든 싫든 부딪힐 기회가 많았다. 여덟 번에 걸친 백두산 동반 등반에 쌩쌩투게더, 런 투게더, 점프 투게더, 서라벌 서밋 등 이름도 다양하다. 직급별로 마련된 각종 이벤트들이 있었다. 공식적인 행사 말고도 인근 점포 간에 회식, 업무적으론 공동상품 개발, 유니폼 통일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앞서 언급된 사례처럼 식당의 음식, 별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자주 얼굴 보고 경험하면서 상대 은행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느끼면서 출발한 것이다. 덕분에 통합 신한은행은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는 등 통합에 따른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 M&A로 큰 하나금융, 과거 방식으론 힘들어
사실, 이 정도의 노력과 자원, 에너지를 퍼부었어도 신한은행은 통합 후 한동안 금융사고가 빈발했었다. 당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합병 이후 일부 직원들은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것들이 금융사고로 터져 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물며 하나금융의 경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 투뱅크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한-조흥의 합병사례를 벤치마킹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성통합이나 문화적통합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며 "과거 하나은행이 해왔던 M&A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빅뱅이 일어나듯 합병하는 식으론 직원들의 반발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은행은 M&A로 성장해 온 은행이다. HSBC(하나·서울·보람·충청)로 불리는 이유다. 전임 김승유 회장은 내부적으로 M&A의 달인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서울은행 합병 후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서울은행은 '조상제한서'의 끄트머리였지만 그래도 대표은행들 중 하나였다. 규모도 더 컸고, 역사도 오래됐다. 쉽게 융합되질 못했다. 하나은행이 매년 초에 은행 전 직원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행사에 옛 서울은행 직원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당시 은행장이었던 김 회장이 큰 상처를 입었던 일화도 있었다.

◇ 하나-외환'비전캠프' 등 소통 노력 강화..결실은?
이 때문에 하나금융도 어느 M&A 때보다 소통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양 은행 책임자와 행원 33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하순부터 10월 초까지 12회차에 걸쳐 그룹의 새 비전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합 비전캠프'를 운영했다. 이어 16회차에 나눠 오는 12월까지 '상상투게더'도 진행한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비전캠프 현장을 방문(사진)하고, 양 은행 직원들과 산행을 함께하는 등으로 조기통합에 대한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이 올해 7월 '조기통합'을 언급한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신한-조흥이 3년에 걸쳐 전사적으로 진행했던 점에 비춰 다소 늦은 감은 있어 보인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는 "신한-조흥과 비교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며 "그동안 소소하게나마 공동행사 진행 등 교류를 통해 직원들간에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의 이런 노력들이 어떤 결실을 볼지는 통합 이후 두고 볼 일이다. 성공적으로 화학적 통합이 이뤄졌다면 새로운 성장 엔진을 단 것 마냥 도약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 M&A 때처럼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