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말 잔치만 늘어놓으면서 설교자 내지는 방관자 역할로 선을 긋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은행권을 압박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 기업 구조조정 한다더니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 구조조정을 화두로 내걸었다. 범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협의체를 만들고, 조선과 해운, 석유화학, 철강 등 경기 민감형 산업 위주로 산업별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부실 징후가 있는 대기업을 사전에 솎아내는 신용위험평가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은 54개로 2010년 65개 이후 가장 많았다.
반면 매각이나 청산을 비롯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성과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산업별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고, 좀비기업 교통정리도 실적이 별로 없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많이 늘긴 했지만, 선제 구조조정보다는 이미 부실에 빠진 부실기업의 뒤처리에 바빴다.
◇ 말 잔치뿐인 구조조정
금융위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발목을 잡혔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조선과 해운 기업 대부분이 부산과 경남권의 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에 몰려 있다 보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말 잔치에 바쁘다. 4월 총선을 의식해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올해부터 신용위험평가 대상을 확대하고, 재무는 물론 산업과 경영위험까지 평가 기준을 강화하겠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위의 발언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동어반복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나마 올해 신용위험 평가 시기는 총선이 끝난 후부터다. 총선 후까지 구조조정 업무는 손대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책임은 은행권에 떠넘기기
금융당국 수장들이 지지부진한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은행권으로 떠넘기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지난 21일 임원회의에서 은행 부실채권의 신속한 정리 등을 통한 자산 클린화와 함께 적정 수준의 대손충당금 적립 등 내부유보 확충 등을 언급하면서 재차 은행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17일 채권금융기관 간담회에서 “기업의 자구노력 없이는 구조조정의 의미가 없다.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으로 산업과 기업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한다”면서 금융권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금융위는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을 잘 아는 채권단이 주도해야 한다”면서 책임 소재도 분명히 정리했다.
반면 금융권은 복지부동이다. 금융위조차 나서기 어려워할만큼 민감한 사안인데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부실 가능성만 보고 돈줄을 조이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다”면서 “정부가 총대를 메지 않으면 대규모 구조조정은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