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최근 진행한 증자가 사실상 실패했다. 이사회에서 1500억원 유상증자를 결의했지만 300억원만 납입되는데 그쳤다. 업계에선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막은 은산분리 규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를 똑같이 받는 카카오뱅크는 올해 4월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카카오뱅크는 성공하고 케이뱅크는 실패한 이유는 뭘까?
◇ 처음부터 마음 없었던 소액주주들
지난 5월 케이뱅크 이사회는 보통주 2400만주, 무의결권 전환주 600만주 등 총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무난하게 성공할 것으로 관측됐다. 올 초까지 5000억원이었던 증자규모를 3분의 1 이상 줄여 주주의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증자가 '주주배정'이 아닌 '3자배정'으로 진행되면서 사전에 증자 참여 여부가 어느정도 조율된 것으로 분석됐다. 증자과정에서 지분율대로 신주를 배정하는 주주배정과 달리 특정인을 지목해 주식을 배정하는 3자배정은 증자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편이다.
하지만 결과는 흥행 실패였다. 19개 주주에 배정된 보통주는 발행에 실패했다. 무의결권전환주 600만주만 간신히 발행했다. 무의결권 전환주는 보통주로 전환전까지 의결권이 없고 배당도 없다.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 주요 주주 3곳이 무의결권전환주를 떠안은 것이다.
이번 증자에 참여의사가 없었던 주주는 주로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회사였다. 증자가 3자배정으로 진행됐지만 신주가 배정된 이사회때부터 이 주주들은 투자의사가 없는 상태였다.
케이뱅크 주식을 보유한 회사 관계자는 "작년에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고 올해는 증자가 없는 것으로 알았다"며 "갑자기 증가가 추진돼 이번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주 2곳도 "이사회에서 증자를 결의했을때부터 증자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증자가 3자 배정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주주의 투자 여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자실패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던 '주식을 배정받은 주주가 납입일에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증자를 하고 싶어도 못한 주주도 있다. 이들 회사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컸다. 한 회사 관계자는 "참여 의사는 있었지만 이번엔 전환주만 발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일부 주주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다른 주주도 연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은산분리 규제에 실권주 처리 못해
케이뱅크는 투자의사도 없는 주주를 대상으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왜 추진했을까.
케이뱅크 관계자는 "설립당시의 지분율 기준으로 주식을 배정하기 위해 '주주배정' 대신 '3자배정' 방식으로 증자를 진행했다"며 "모든 주주가 투자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고 실권주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했고 은산분리 규제 탓에 주요주주가 실권주를 소화하지 못하면서 증자는 실패로 끝났다. 은행법을 보면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의 4% 이상(의결권 미행사시 10%)을 보유할 수 없다. 산업자본계 주요주주인 KT와 NH투자증권은 이미 10%를 보유하고 있어 실권주를 추가로 인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주주는 "이미 보통주 지분율이 10%에 가까운 상황이라 실권주를 추가로 인수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결국 케이뱅크는 소액 주주 설득, 실권주 처리 방안 등을 준비하지 않은 채 유상증자를 밀어붙인 셈이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카카오뱅크는 어떻게 5천억 증자 했나
반면 카카오뱅크는 올 4월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성공하며 자본금을 1조3000억원으로 늘렸다. 증자 성공 배경엔 금융주력자인 대주주가 있다. 한국금융투자는 카카오뱅크 지분 50%를 확보하고 증자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다. 반면 케이뱅크 주요 주주인 NH투자증권은 지배구조 정점에 농협중앙회가 있어 산업자본으로 분류, 은산분리 규제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활용한 카카오뱅크의 파급력에 나머지 주주들도 증자에 동참하고 있다. 올 3월 기준 카카오뱅크 계좌 고객은 567만명으로 케이뱅크 70만명보다 8배 이상 많다. 케이뱅크보다 카카오뱅크가 더 매력적인 투자처인 셈이다.
카카오뱅크 주주는 한국금융지주, 국민은행, 우정사업본부, SGI서울보증, 카카오, 이베이, 넷마블, 예스24 등 9곳이다. 지분의 절반을 금융자본(한국금융지주)가 보유하고 있고 카카오뱅크가 케이뱅크보다 주주구성이 단순하다.
증자 방식도 미묘하게 달랐다. 카카오뱅크가 추진한 지난 4월 유상증자 방식은 '3자배정'이 아닌 '주주배정'이었다. 카카오뱅크 주주는 지분율대로 신주를 배정받았고, 모두 증자대금을 납입했다. 배당없는 케이뱅크 무의결권 전환주와 달리 카카카오뱅크는 연 1%의 배당이 보장된 무의결권 전환우선주를 발행했다. 카카오뱅크가 케이뱅크보다 증자 발행 조건이 더 좋았던 셈이다.
카카오뱅크는 2016년 1월 9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뒤 2016년 2991억원을, 2017년 5000억원, 2018년 5000억원 등을 차례로 증자했다. 반면 케이뱅크는 160억의 설립 자본금을 출발했지만 잇단 증자 실패로 자본금은 3800억원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 은산분리 완화 급물살 타나
케이뱅크는 증자를 재추진하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기존 주주가 주도하거나 새로운 주주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다시 증자를 추진중"이라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더 빨라질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박용진 의원이 교육위로 빠지게 됐다"며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부도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정기국회 전이라도 빨리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생각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