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충당금 쌓기에 금융당국의 기대만큼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지표가 너무나도 좋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충당금은 향후 발생할 부실에 대비하기 위해 쌓는 것인데, 현재 데이터로 봤을 때는 현재 수준만으로도 적합하다는 것이다.
위기 맞아? 너무 좋은 지표
은행은 대출을 취급한 이후 이 대출이 정상 상환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고정이하여신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전체 여신중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은행이 취급한 대출이 얼마나 잘 상환되고 있는지, 즉 은행의 자산이 얼마나 건전한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지난 1분기 기준 국내 시중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NPL비율)은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주요 시중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 0.20%, 신한은행 0.36%, 하나은행 0.24%, 우리은행 0.28%, NH농협은행 0.23%로 집계됐다. 전체 대출중 연체가 되고 있는 대출의 비중이 극히 적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쌓은 충당금으로도 향후 부실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은행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이들 은행들이 고정이하여신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충당금을 활용할 수 있는 비율(NPL 커버리지비율)은 평균적으로 200%가 넘는다.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대출의 연체가 발생하더라도 은행들은 감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투명한 미래
분명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만 따져보면 현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국내외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보니 은행의 예상보다 큰 파고가 덮쳐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부문은 한계기업들의 증가와 기업과 가계가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는 상황에서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다.
지난해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기업 2만5871개중 34.5%는 영업이익으로 대출의 이자도 갚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기업중 3.5개는 '한계기업'이라는 얘기다.
조사 시점 당시 기준금리가 0.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준금리가 1.50%까지 오른 현재는 이러한 한계기업이 더욱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한계기업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며 "여기에 중소기업 등에 대한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고 나면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예의주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역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후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가 금융기관으로 부터 빌린 돈은 1800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경제가 성장한다면 가계가 금융기관으로 부터 빌리는 돈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금융기관이 시장에 자금을 적절하게 공급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가계부채의 질을 따져보면 이를 현 상황에 대입하기 힘들다. 부실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3개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2019년 말에 비해 10만명 가량 늘어나 340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특히나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2.00%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대출의 80% 이상이 시장금리 상황에 따라가는 변동금리 대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현재보다 두 배 가량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 "충당금 언제든 쌓을 수 있다"
은행들은 현 시점에서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으며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일단 현재 시점에서도 예상보다 부실이 많아질 것을 상정하고 충당금을 쌓는 측면이 있다"며 "게다가 코로나19 특수로 인해 순익이 많이 늘었고 앞으로도 순익 수준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향후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며 "실제 관련 본부부서의 경우 핵심경영성과지표로 리스크 관리의 배점을 올리기도 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