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비금융 산업 진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잡음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특례로 허용돼 금융권이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이동통신사업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금융사의 통신업 진출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데 금융권내에서나, 통신업계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있다. 금융권의 비금융 영토확장 선례인 '알뜰폰' 사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토스가 알뜰폰 사업체를 인수하고 직접 통신사업을 펼치겠다고 나서면서 금융권에 불을 지폈다. 금융권이 간절히 바라오던 통신업 진출을 비교적 쉽게 이뤄내면서다.
금융권에서는 철저한 법의 규제 속에서 영업을 펼치는 기존의 금융회사와 법적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영업을 펼치는 빅테크 기업간의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토스, 금융수퍼앱 도약 위한 '알뜰폰 업체 인수'
지난달 21일 토스는 알뜰폰 업체 '머천드코리아'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금액은 약 1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토스는 이번 인수를 바탕으로 토스앱에서 알뜰폰 가입 서비스를 내놓기로 했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주로 가입되는 알뜰폰의 특성에 더해 토스가 보유하고 있는 '맞춤형 서비스'제공이 시너지를 내면 금융소비자의 통신비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토스 측은 "토스는 본인확인기관, 전자서명인증 사업자 지위를 모두 보유한 사업자로서 알뜰폰 가입 과정에서 토스인증서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토스가 금융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사회적 효용을 만들어낸 것처럼 알뜰폰 가입 고객의 불편함 해소와 토스 고객 통신비 절감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알뜰폰 업체 인수가 토스가 추진하는 '금융수퍼앱'으로의 진화를 촉진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미 은행과 증권을 필두로 금융권의 시장 장악력을 높혀가는 토스가 통신까지 사업을 넓히고 이 모든 서비스를 모태인 토스앱에서 제공한다면 토스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생태계 조성이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토스를 통해 은행거래, 주식거래, 자산관리, 본인인증 등을 넘어서 통신까지 품는다면 편의성 측면에서 전통적인 금융회사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 알뜰폰 업체 인수는 토스의 약점이라고 평가받던 비금융데이터 확보에 더욱 힘을 보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그간 토스의 계열사들이 신용평가모형 등을 개발할 때에는 비금융 데이터 확보에 애를 먹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라며 "카카오, 네이버 등 다른 빅테크 들이 고객 쇼핑 데이터 등 비금융 데이터와 금융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시너지를 내 왔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인데 토스는 금융쪽에만 사업이 쏠려있다보니 이들에 비해서는 비금융 데이터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에 통신사업에 뛰어들면 그동안 부족했던 비금융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으로 이를 바탕으로 토스의 금융 경쟁력이 한 층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다시 불 지핀 토스
토스가 알뜰폰 사업체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권에서는 불만이 쏟아지는 모양새다. 금융권이 가장 바라던 통신사업 진출을 별다른 제약없이 이뤄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토스는 이미 금융지주 회사급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는데 지주회사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비금융 업권에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빅테크의 부상 이후 꾸준히 문제제기가 돼 왔던 '기울어진 운동장'이론에 대해 다시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현재 금융지주 계열 회사들은 금융지주법, 은행법 등 강한 규제를 바탕으로 비금융 산업 진출이 철저하게 제한돼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해당 회사의 지분 15%까지만 가능하다. 즉 의결권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아 금융-비금융의 융합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 토스의 경우 간편송금앱 토스가 자회사들을 지배하는 구조다. 토스가 현재 영위 하는 사업을 분류한다면 '제조서비스업'에 해당한다. 사업 영위의 근거 법률도 전자금융거래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다. 사업영역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과 다른 법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다.
실제 현재 토스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인슈어런스 △토스페이먼츠 등 금융회사는 물론 △토스씨엑스(CS) △브이씨엔씨(타다) △토스플레이스(단말기 제조업) △한국크레딕라이프(단말기 사후관리) △머천드코리아(알뜰폰 사업체) 등 비금융 회사의 주요 주주다.
그간 토스 측은 토스플레이스와 한국크레익라이프의 경우 금융과 관련이 높은 사업영역이며 브이씨엔씨 지분의 경우 재무적 투자 차원의 성격이 짙다며 비금융 업권 진출에 대해 신중한 의견을 내비쳐왔다. 그런데 통신사업 만큼은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만큼 금융과 통신의 시너지가 강력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은행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의 경우 규제유예제도인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알뜰폰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2년 마다 금융당국의 허가를 매번 받아야 한다"며 "부수업무와 겸영업무 등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은행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지주 급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춘 토스의 경우 법적 규제에서 자유로워 비금융 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업은 고객의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는 특성상 대주주의 적격성을 강력하게 따진다"라며 "반면 토스의 경우 대부분 자기자본이 아닌 투자금 유치를 바탕으로 자본을 모아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들 투자자들이 탄탄하며 세계적인 투자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대주주의 재무건전성에 대해 기존 금융회사에 비해 허술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토스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에서 한차례 고배를 마신 것 역시 금융당국이 이런 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토스측은 전 세계적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 속에서도 최근 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확정한 것은 사업성 등이 인정받는 것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토스의 불안요소였던 순익과 관련해서는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만큼 내년에는 흑자전환도 가능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이와 관련 올해 1분기 기준 토스의 당기순손실은 792억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