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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융위 오판에 주담대 다시 폭증…작년 잊었나

  • 2025.03.07(금) 15:43

금융위 지적에 우리·NH·하나은행 주담대 금리 인하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에 금리인하까지 '기름 부은 꼴'
작년처럼 금융위 오판…대출자 발동동·은행 '안절부절'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이제는 대출금리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가 됐다"고 하자 우리은행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인하했다. 이어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이 "(다른 은행도) 우물쭈물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독촉하는 듯 발언 했고 NH농협·하나은행도 주담대 금리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같은 금융위의 잇단 발언은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주었을까. 대출금리 인하는 대출 수요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새해가 되면서 은행들은 대출 문턱을 낮췄고, 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가계부채는 여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3조931억원(0.4%) 증가했다. 작년 9월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관련 기사: 금융위 또 '가계대출' 잘못 짚었나…수요폭증하는데 대출금리 인하?(3월5일)

가뜩이나 대출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당국의 발언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오는 7월에는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금융당국은 4~5월 세부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규제가 목전까지 온 가운데 가계대출이 폭증하면서 일각에서 예상했던 3단계 스트레스 DSR 유예나 완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에 은행권에선 3월이 대출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달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작년 6월의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건 기우일까. 금융당국은 작년 7월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던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 일주일 전 돌연 9월로 연기했다. 당시 부동산 PF 위기가 고조되면서 연착륙을 강조하던 시기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 먼저라는 입장이 깔려있었다. 이 결정이 대출 수요를 부추겼고, 결국 두 달여간 가계대출은 10조원 이상 늘었다.

최근 대출금리 인하를 연일 언급하는 건 소비자로 하여금 한도가 줄기 전 빨리 대출을 받으라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서울 강남권의 토지거래허가제를 완화한 부동산 정책 또한 인근 지역 집값을 끌어올리는 등 '지금 사지 않으면 못 산다'는 작년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관련 기사: [집잇슈]집 사라는 시그널 셋…진짜 사?(3월4일)

사실 금융위의 정책 방향성도 모호하다.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면서 또 한편으론 올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1~2%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은행들은 당국의 압박에 대출금리를 내렸는데 동시에 대출 총량까지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출수요는 몰려드는데 무작정 늘릴 수 없으니 '일일 한도'를 관리하는 궁여지책에 다다랐다.

하나은행의 비대면 주담대 상품인 '하나원큐주택담보대출'은 오전 9시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한도가 마감된다. 차주들은 아침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9시만을 기다리는 '비대면 오픈런' 중이다. 은행 지점 창구의 상황은 그나마 낫지만, 한도 관리가 빠듯한 건 마찬가지다. 오픈런에 실패한 고객들은 연일 불만을 토로하면서 은행은 난감한 상황이다. 소비자도 은행도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모든 정책(당국자의 말 한마디도 마찬가지)은 정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 상황을 세심하게,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정책도 어긋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를 해야 병이 나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사의 오진에 따른 피해는 결국 환자한테 고스란히 돌아온다.

당장 대출금리가 내려서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자칫 작년 하반기와 같은 '대출 셧다운' 상황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정작 대출이 절실한 소비자들조차 대출을 못받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는 작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명확한 정책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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