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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家]<17>대화①사라진 강원산업 장자의 꿈

  • 2013.10.01(화) 14:04

강원탄광으로 출발…한때 재계 26위 반열에 올라
정문원 회장 가업승계…‘국난’ 외환위기로 좌초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난(國難)’이었다. 아무리 ‘대마불사(大馬不死)’로 통했다고는 하지만 재벌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혼돈 앞에서 대우, 쌍용, 동아, 고합, 아남, 해태 등 30대 그룹 중 3분의 1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삼표연탄’ 신화를 만들어낸 재계 26위의 강원산업그룹도 끝내 거센 풍랑을 비껴가지 못했다. 제2의 성장동력으로 키우던 철강사업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탓이었다. 강원산업그룹이 2000년초 좌초하면서 철강그룹을 꿈꿨던 정문원(74) 회장의 야심도 그렇듯 덧없이 사라졌다.

◇1970년대 신흥재벌로 급부상

강원산업그룹은 1952년 고(故) 정인욱(1912~1999) 창업주가 강원도 철암 골짜기에 강원탄광(강원산업 전신)을 설립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 석탄은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에너지자원이던 때라 탄광개발 사업은 단기간에 궤도에 들어섰다.

다음으로 뻗어나간 분야는 연탄사업이었다. 자체 생산한 무연탄을 직접 가공하기 위해 1963년 서울근교에 연탄공장 3개를 지었다. ‘삼표연탄’ 신화는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삼표연탄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삼강운수(현 삼표의 전신)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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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산업그룹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몸집을 불렸다. 석유·가스, 레미콘, 기계제작·주물공업으로 빠른 속도로 사세(社勢)를 넓혀가던 강원산업그룹은 1970년대 들어서는 철강부문에까지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강원산업그룹은 신흥재벌로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정 창업주의 가업승계 밑그림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정 창업주는 김려애(1995년 별세) 씨와의 슬하에 2남3녀를 뒀다. 그룹 경영에 발을 들여놓은 2세들은 문원씨와 도원씨 등 아들 둘 뿐이다. 딸 영자, 청자, 연희씨와 사위들은 그룹 경영에는 일정한 거리를 뒀다.

◇장남 1989년 대권 승계

정 창업주는 장남 문원씨가 1967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들어오자 곧바로 그룹에 들였다. 강원산업그룹이 철강산업 진출을 불과 몇 해 앞둔 때였다. 문원씨는 경복고, 연세대 물리학과, 미국 마아퀘트대를 졸업했다. 미국 유학후 주력사인 강원산업 이사를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간 그는 1975년 전무, 1980년 부사장, 1982년 사장을 거쳐 1989년 6월 강원산업그룹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대권을 물려받았다. 입사 22년 만으로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

당시 정 창업주와 동생 정인엽 부회장은 모두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정 창업주가 77세로 연로해 자연스럽게 가업승계가 이뤄진 셈이다. 세대교체에 맞춰 정 창업주의 차남 도원씨도 강원산업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를 계기로 강원산업그룹은 형이 끌고 동생이 미는 ‘쌍두마차’ 체제를 갖췄다.

정 회장이 ‘2대 경영시대’를 열 당시 강원산업그룹은 모태인 강원산업을 비롯해 계열사만 해도 15개사나 됐다. 특히 가장 늦게 시작한 철강 등 중공업 분야가 전체 외형의 50%를 넘어설 정도로 철강그룹으로 변신해 있었다.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340만톤 규모의 철강생산 능력을 갖출 정도로 공(功)도 많이 들였고 그만큼 거침없이 질주했다.

강원산업그룹은 마침내 1998년 4월 재계 29위(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기업집단 지정·1999년 4월 26위)로 30대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국내 전기로 3위 업체 강원산업, 콘크리트파일 및 레미콘 업체 삼표산업, 철강재 유통판매회사 삼표상사, 산업기계생산업체 삼표제작소 등 계열사는 29개사로 불어났다. 총자산은 2조6650억원에 달했다.

◇철강사업 무리한 증설 화근

강원산업그룹은 하지만 화려한 외형과 달리 속은 이미 곪을대로 곪아있었다. 철강분야의 지나친 증설이 화근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쳤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당시 철강경기는 악화일로였다. 이로인해 유동성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30대그룹으로 지정된 그 해 7월 강원산업, 삼표산업, 삼표상사, 삼표강원중공업 등 주력 4개사가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으로 부터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됐고, 12월에는 채권단과 기업개선작업약정을 체결하는 시련을 맞았다.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눈물겨운 사업구조조정이었다. 부동산 등 웬만큼 돈 되는 것들은 죄다 팔았다. 대주주의 사재 출연도 있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계열사간 통폐합도 빼놓지 않았다. 이로인해 1999년 말에 가서는 계열사가 강원산업, 삼표제작소, 삼안운수, 삼표산업, 강원궤도, 삼표에너지 등 6개사에 불과할 정도로 그룹 외형은 축소될 대로 축소됐다.

그러나 부질 없었다. 1998년 7월~1999년 6월 566억원 순손실을 낸 강원산업은 1999년 하반기에는 적자액이 1950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은 628%로 치솟았다. 끝내 재건에 실패한 강원산업은 2000년 3월에 가서는 사돈집안 정몽구(75) 회장의 현대차그룹 계열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흡수합병됨으로써 2대 정문원 회장의 강업산업그룹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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