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기업들이 편법적인 대물림으로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일 때 신세계그룹은 세금납부라는 정공법을 택해 승계문제를 둘러싼 잡음의 소지를 없앴다.
지배구조도 단순하다.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로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신세계를 정점으로 지주회사와 다름없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하지만 3년전 실시한 신세계와 이마트의 기업분할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기업분할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책임경영이 가능해졌지만 작아진 외형 탓에 경쟁사의 공세에 대응할 때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신세계는 증여세를 납부해 정당하게 지분을 승계하는 절차를 밟았다. 사진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그래픽=한규하 기자) |
◇ '세금납부' 정공법 택한 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2006년 아버지인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신세계 주식 147만주(시가 6870억원)를 물려받으면서 이듬해 3500억원에 달하는 신세계 주식을 증여세로 현물납부했다. 정 부회장 남매가 낸 증여세는 역대 최대규모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신세계는 2011년 5월 기업분할이라는 또한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사업을 함께 영위하던 신세계를 백화점업(신세계)과 대형마트업(이마트)을 담당하는 별도의 회사로 쪼갠 것이다. 유통업계는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했다. 이마트는 정 부회장, 신세계는 정 부사장에 넘겨주기에 앞서 기업분할로 교통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조선호텔 임원으로 있던 정 부사장이 백화점 부사장으로 이름을 올릴 때 백화점은 정 부사장 몫이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백화점과 마트를 분할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선 이뤄지기 힘든 결정"이라고 말했다.
◇ '왜 분할했나?' 고개드는 회의론
신세계는 기업분할 목적으로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체제 확립 ▲독립경영 및 책임경영 체제 구축 ▲기업가치 극대화 등을 들었다.
민영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마트와 백화점은 상품소싱 구조가 달라 한 법인에 묶어두기보다는 별도의 법인으로 가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낫다"며 "신세계의 결정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나눈지 3년이 흐른 지금 기업분할의 성과는 신통치않다.
신세계의 시가총액은 분할전 11조원에서 현재 9조원(이마트 합산)대로 떨어졌다. 영업규제와 소비침체 영향이 크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게 분할의 목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성적표다.
유통업계는 올해 초 문을 연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의 배송지연·결제오류 등의 문제도 기업분할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로 꼽는다.
온라인몰은 신세계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핵심사업이다. 하지만 신세계와 이마트가 각각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구매, 배송, 반품, 환불 등 상품구매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다. 조직통합보다 사이트 통합을 서두르다 문제가 발생했고, 오류원인을 찾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통합법인이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 "백화점, 분할 이후 재무구조 약화"
특히 신세계가 분할을 결정한 시기는 경쟁업체인 롯데쇼핑이 바이더웨이, GS백화점·마트를 사들이며 사업확장에 한창 주력할 때다. 롯데쇼핑은 이듬해 하이마트를 인수하며 유통업계 내 영향력을 더 확대했다.
이에 비해 신세계와 이마트는 외연확대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나였던 회사가 둘로 쪼개지면서 재무적 대응력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책임경영 강화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기업분할이 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분할의 부작용은 백화점 부문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지난 2012년 점포 수성(守城) 차원에서 진행한 서울 강남의 센트럴시티 인수로 부채비율이 90%대에서 140%대로 뛴 게 대표적인 예다. 분할 이후 자기자본이 4분의 1로 축소(분할비율, 신세계 26 : 이마트 74)되면서 외부충격에 쉽게 흔들리는 재무구조로 변한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발표한 그룹분석보고서에서 "이마트 분할 이후 백화점 부문의 전반적인 재무구조가 약화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 신세계그룹의 지배구조는 단순명료하다.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로 그룹을 지배하는 다른 대기업들과 다르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지주회사와 다름없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그래픽=한규하 기자) |
◇ 사업확대 시동, 지주사 전환 포석
승계를 위한 다음 수순은 지주회사 전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 부회장 남매의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율은 9.8%에 불과하다.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지분(17.3%)을 물려받고 이 가운데 절반을 증여세로 현물납부한다고 가정하면 정 부회장 남매의 지분율은 18% 가량이 된다. 이 정도로는 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주사 전환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신세계와 이마트를 각각 인적분할한 뒤 대주주가 보유한 사업자회사의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면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신세계와 이마트는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요건(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 보유) 충족을 위해 미리 자사주를 사들일 필요가 있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상속증여세로 줄어드는 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지주회사 전환밖에 없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세계그룹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기업규모를 키우는 일이 선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이 주로 채택한 순수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과 브랜드 사용료 등이 수입의 전부라, 사업확대에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지주회사 전환 전에 규모의 경제를 이룰 필요가 있다. 신세계는 올해 초 앞으로 10년간 총 31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며 사업확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