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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대한항공-아시아나' 독하게 싸우는 이유

  • 2014.11.07(금) 16:47

양대 항공사 26년 전쟁 뒤엔 당국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어느 한 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습니다. 갈수록 불이 붙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국적항공사 사이의 감정싸움 얘깁니다. 작년 7월 아시아나항공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낸 착륙사고가 단초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를 낸 아시아나에 대한 제재를 앞두고 있는데요. 당사자인 아시아나는 운항정지를 과징금으로 갈음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치권 인사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경로로 국토부에 처벌 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쟁사인 대한항공은 원칙대로 엄정 처분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운항정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급기야 지난 5일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까지 나서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국토부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 운항정지 받으면..매출·이미지 타격


작년 7월 7일 새벽 전해졌던 사고 소식 기억하시나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려던 아시아나 B777-200 여객기 꼬리 부분이 방파제 턱에 부딪히며 승객 3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고 비행기도 전파(全破)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1년여 사고조사를 진행한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의 주요 원인은 조종사 과실에 있다"는 결론을 내려 한국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열어 제재 수위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지난 8월쯤 나왔어야 할 행정처분이 석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부도 어떻게 처분을 내릴지 고민이 많은가 봅니다.

 

국내 항공법에 따르면 아시아나는 이 사고로 인명피해 60일, 재산피해 30일을 더해 총 90일을 기준으로 해당 노선 운항정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유에 따라 50%까지 더하거나 뺄 수 있어 최소 45일부터 최대 135일의 운항정지가 내려질 수 있는 겁니다.

 

아시아나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피해도 막심한데 제재까지 받으면 영업 타격이 또 생기니까요. 만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에서 90일 운항정지 처분을 받으면 300억여원의 매출손실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위험한 항공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돼 지금껏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영업망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업정지만은 막아보자'는 입장인 겁니다. 게다가 아시아나는 경영 악화로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처지입니다.

 

 

◇ 17년전 쓰라린 기억.."원칙대로 해라"

 

하지만 '항공사와 이용자들에게 심대한 불편을 주거나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운항정지는 과징금 부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도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겁니다. 과징금은 15억원을 기준으로 7억5000만~22억5000만원에서 결정될 수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과 미주한인총연합회 등 미주지역 7개 교민단체, 국내·외 43개 항공사 등이 잇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내놓은 것도, 과징금 부과 정도로 제재 수위를 낮춰달라는 아시아나 측 입장을 전한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이런 게 못마땅한 입장인 거죠. 사고를 냈으면 벌을 받으란 겁니다. 노조에 이어 회사 측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운항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아시아나와 국토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때 미국 측의 관제문제가 있었음에도 3개월의 운항정지를 받았고, 또 1년6개월 동안 노선배분에서도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았다는 게 이유죠. 자신에게 아픈 선례가 있는만큼 경쟁사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공평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당시 대한항공이 신규노선 취항 및 증편 기회를 뺏긴 동안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17개 노선을 포함해 알짜노선 30여개를 차지해 대한항공을 부쩍 추격했다"고 합니다.

 

◇ '도전과 응전' 그 뒤에는 당국의 헛발질

 
 

두 항공사의 싸움은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면서부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승객 수요라는 '파이'는 뻔한데 이를 갈라 먹어야 하기 때문이죠.

 

'제 2민항'으로 탄생해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아시아나의 '도전'과 이를 막아내고 최대 국적항공사로서 규모의 경제 속에 실리를 찾아야 하는 대한항공의 '응전'이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역사였던 셈입니다.

 

재밌는 것은 항공정책 방향이나 각각의 입장에 따라 '무기'가 뒤바뀌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번과 달리 때로는 아시아나가 원칙을 앞세운 논리로 당국을 압박하고 때로는 대한항공이 감성에 호소하며 여론전을 펴기도 합니다.

 

바로 6개월 전, 중국 운수권 배분 때만해도 대한항공은 '사고를 낸 항공사에 페널티를 줘야 한다'며 여론을 동원했고, 아시아나는 사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고 배분 규칙대로 해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항공사가 이렇게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항공정책, 노선배분 원칙에 대한 항공사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의 결정이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이뤄지다보니 두 항공사 모두 상대방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불신을 갖고 있는 겁니다.

 

교통부(~1994년), 건설교통부(~2008년), 국토해양부(~2013)를 거쳐 국토교통부까지, 당국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지만 정책 결정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고위층,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직도 이렇게 싸움이 시끄러운걸 보면 말이죠.

 

 

■양대 국적사의 노선 쟁탈전

 

1991년 한-일간 항공노선 배분 문제부터 시작해 1992년 한-중국간 노선이 처음으로 개설될 때 등 항공시장 확대로 알짜 노선이 생겨날 때마다 이를 배분하는 문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전투구를 벌였다.

 

중단거리 노선만 취항토록 설립됐던 아시아나가 장거리 노선 취항을 인정 받은 1994년 이후부터는 싸움이 더 격해졌다. 상하이(上海), 타이베이(臺北), 파리, 하와이 등 황금노선뿐 아니라 몽골(울란바트로), 베트남 다낭, 팔라우 등 비인기 노선을 놓고도 육탄전을 펼쳤다.

 

법정다툼도 잦았다. 타이베이 노선을 두고는 대한항공이, 상하이노선에 대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당국을 상대로 '운수권 배분 취소소송'을 걸기도 했다. 올들어 9월말까지 우리나라 국제선 승객 점유율은 대한항공이 29.6%, 아시아나항공이 22.0%이며 이밖에 5개 저비용항공사가 11.4%, 외항사가 37.1%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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