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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 바꾼 M&A] 대생은 지켰고, 대우조선은 버렸다

  • 2014.12.03(수) 16:00

③한화의 성장동력 M&A..그 숱한 우여곡절

 

최근 삼성그룹과의 빅딜로 재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한화그룹. 한화는 2000년 이후 2건의 대형 M&A(인수합병)에 뛰어든다. 2002년에는 대한생명, 2008년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했다.

 

대한생명 인수에는 성공했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에는 실패했다. 정확하게는 인수를 포기했다.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산 뒤에는 매각자(예금보험공사)로부터 다시 토해 내라는 압력에 시달렸다. 대우조선의 경우는 매각자(산업은행)로부터 계약한 대로 사 가라는 압박을 받았다.

 

대생 지분 51%를 매각했던 예보는 한화그룹이 컨소시엄 구성원(호주 맥쿼리보험)과 이면계약을 맺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매각이 원천무효라고 공세를 폈다. 예보는 소송도 제기했다. 소송의 배경에는 사실 헐값 매각 논란이 깔려 있었다. 한화는 버텼고, 소송에서도 이겼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3000억원이 넘는 계약보증금까지 냈지만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핵폭탄이 터지면서 전세계 경기가 급랭하자, 한화는 인수대금 분납과 일정 연기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산은은 계약대로 진행을 요구했다. 한화는 버텼고, 산은은 입찰보증금을 몰수했다. 한화는 보증금 반환 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 한화가 입수한 '특급정보'

 

 

2008년 대우조선 인수전 당시로 돌아가 보자. 10월13일 입찰 마감일 오후, 한화는 '특급정보'를 입수한다. '포스코-GS 컨소시엄'이 깨졌다는 내용이었다.

 

인수전은 애초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의 4파전으로 시작했다. 포스코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GS가 다음, 한화는 3위쯤으로 평가됐다. 현대중공업은 인수전에 참여하는 척 하면서 실사과정에서 대우조선 내부를 들여다보겠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의지는 한화가 가장 강했다. 한화는 보도자료를 내고, 김승연 회장(사진)이 대우조선을 한화의 새 성장동력을 발전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천명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만큼 한화는 대우조선을 갖고 싶어했다.

그런데 본입찰 마감을 며칠 앞두고 최강후보 포스코와 GS가 전격적으로 손을 잡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인수전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난 것으로들 봤다. 그런데 수세에 몰린 한화에 포스코-GS 컨소시엄 파기 정보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정보는 신빙성이 높았다. 언론매체의 안테나에도 잡혀, 긴급뉴스로 타전됐다. 컨소시엄이 깨진 이유는 입찰가격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6조원 이상 써 내야 한다는 포스코의 주장에 GS가 반대했고,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GS가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다급해진 포스코가 단독으로라도 참여하겠다며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산은은 포스코의 단독 참여는 절차상 원천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

◇ 호기로운 6.3조..일찍 터뜨린 샴페인

한화는 6조 3000억원을 써내고 대우조선 우선협상대상자자로 결정됐다. 6.3조원은 실무자들이 인수금액을 확정짓지 못하자, 김승연 회장이 '우리 63빌딩도 있으니 그걸로 하지'라는 말로 매듭이 지어졌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대물을 인수한 한화는 축포와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무렵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 분위기는 서서히 냉각되고 있었다. 미국의 대형 투자회사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도화선이 돼 전세계 금융시장은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한화는 산은에 계약조건 재협상을 요구했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시장변화가 닥쳤으니 인수대금 분납과 연기를 요구하는 한편 한화 계열사들이 매각할 자산을 산은이 우선매입해 줄 것 등을 요청했다.

 

산은은 응하지 않았다. 산은 내부에서는 아마 계약조건 변경시 불거질 '특혜' 시비 등을 우려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화는 최초 계약조건대로는 인수를 못하겠다며 버텼고, 산은은 입찰보증금(3150억원) 몰수로 대응했다. 한화는 이후 보증금 반환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산은의 손을 들어줬다. 한화가 대우조선을 계약대로 인수하지 않고 버틴데 대해 시장 일각에서 비난을 쏟아냈다. M&A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지적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화는 의리, 신뢰, 신의를 내세우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6조원대 매물을 계약 그대로 사는 것은 그룹의 생사와 관련한 문제였다. 그 때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에 6조 자금을 집행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림을 그려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대한생명 인수..논란과 우여곡절의 연속

 

 

앞서, 2002년 9월 인수에 성공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은 그룹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사실 M&A 과정에서 한화의 대생 인수만큼 많은 논란을 야기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한화그룹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 1조6000억원의 인수자금 동원능력이 의심스럽고, 과거 한화종금, 충청은행, 한화파이낸스 등 계열 금융회사들을 부실화 한 적이 있어 경영능력에도 하자가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인수자격 논란에 휩싸였지만 한화는 우여곡절 끝에 예보과 최종협상을 타결지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수 3년 뒤 다시 불거졌다. 2005년 예금보험공사가 매각 원천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한화는 이후 한동안 후폭풍에 시달렸다. 예보는 한화가 인수협상 당시 구성했던 컨소시엄 내 이면계약을 문제삼았다. 당시 한화는 대생 인수를 위해 일본 오릭스, 호주 맥쿼리보험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 내 오릭스와 맥쿼리의 지분비율은 각각 30%와 7%였다.

맥쿼리와 손잡은 데는 매각조건상의 우대조건(보험업종 회사 우대)을 만족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화는 맥쿼리에게 3가지 이면약속을 했다. 맥쿼리가 부담할 인수자금분을 대여해주겠다는 것, 대생 지분을 나중에 되사주겠다는 것(콜옵션), 그리고 대생 자금 중 일부에 대한 운용권을 맥쿼리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 헐값 논란..그룹 사활을 건 '버티기'

예보는 이같은 이면계약이 한참 뒤 드러나자, 이를 문제삼았다. 하지만 예보가 무효소송까지 진행한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한화가 대생을 인수한 뒤 정치권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헐값 특혜 매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금융공기업 예보로서는 손놓고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화가 옵션 등 이면계약 내용을 공시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나 컨소시엄 당사자간 옵션계약을 매각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는 없다"며 "보험사인 맥쿼리의 컨소시엄 내 지분이 7% 밖에 안되므로 매각자의 의사결정에 맥쿼리의 컨소시엄 참여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다 보기도 어렵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반면, 맥쿼리 비중이 적었더라도 인수자금 대여, 콜옵션 계약, 자금 운용권 부여 등이 갖는 의미가 적지않은 만큼 투명하게 진행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만만찮았다.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해서도, 1999년에 이미 세차례 매각작업이 무산된 적이 있는데다 매각 주간사에서 실사 뒤 평가한 수준보다 2배 정도 높은 가격으로 한화가 인수했기 때문에 헐값논란은 타당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었다.

어쨋든 한화는 예보와 정치권의 공세에 맞서 그룹의 사활을 걸고 버텼다. 소송에서 승리함으로써 대생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한화는 이후 대생 사명을 한화생명으로 바꿨다. 푸르덴셜증권을 인수, 한화증권과 합병하는 등 생명보험 손해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들을 네트워크화 해 시너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아직은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제조분야에서는 태양광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으나 업황이 여전히 침체상태다.

최근 삼성으로부터 방산(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과 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업체를 인수, 기존 주력사업에서 업계 1위 자리를 구축,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형국이다.  

 


▲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재계를 바꾼 M&A] 기획 시리즈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 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fntom@naver.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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