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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속사정]회식문화…결혼은? 애는?

  • 2016.08.10(수) 14:31

천편일률적 회식…사생활 간섭까지
회식의 순기능(소통의 장) 살려야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7월 발표된 'DOC와 춤을'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당시만 해도 청바지 출근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많은 기업이 복장은 물론 회의와 업무방식, 야근, 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근대적 직장 문화 또한 여전하다. 이제 막 직장 생활에 적응한 '김 대리들`의 고민을 들어본다. [편집자]

 

 
"여자는 때 놓치면 안 된다고, 때가 한참 지났는데 언제 결혼할 거냐는 얘기를 회식 때마다 해요. 부모님도 하지 않은 결혼 걱정인데, 지극정성이죠. 한 번은 옆 팀 남자 직원이랑 자꾸 엮어주려고 해서 황당했어요. 차라리 위장 연애라도 할까 싶어요."

직장 6년 차 민성희(가명·32세) 씨는 회사 회식 자리에서 명절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명절에는 1년에 한두 번 만나니 할 말이 없어 결혼 얘기를 물어본다지만, 회식 자리에선 몇 주에 한 번씩 반복되는 잔소리에 넌더리가 난다는 것이다.

민 씨는 "회식이 아무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라지만 껄끄러운 사생활에 대한 관심은 부담스럽다"며 "바라지도 않는데 내 인생 컨설팅을 왜 해주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논할 때 '회식'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다. 특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 대리들'에게 회식 자리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조직 구성원끼리 친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분위기에 따라선 오히려 업무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회식 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많고 실제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 감동도 재미도 없고 천편일률적
 
수년 전 인터넷에선 '회식 자리 배치도'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샀다. 일인자가 안쪽 가운뎃자리를 차지하고, 양옆에 조직의 실세나 아부 그룹이 앉는다는 식이다. 일인자 앞엔 술 좀 마신다는 신입 사원들이나 주당들이 앉아 화장실에도 못 가고 술잔을 돌리며 상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양쪽 끝자리엔 술을 싫어하거나 아웃사이더들이 앉아 지루해한다.
 

 

최근엔 한 유통업체가 이런 전형적인 음주 문화를 소주잔에 새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장은 "내 밑으로 원샷", 부장은 "끝까지 남는 놈이 내 새끼", 사원은 "주는 대로 마시겠다" 등 직급별 소주잔을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릇된 회식 문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회식 자리 배치도나 직급별 소주잔은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그만큼 천편일률적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상사 입맛에 맞는 장소 물색과 음주 강요, 건배사, 잔소리, 늦은 귀가 등은 회식의 전형적일 레퍼토리다.

이는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0~80%의 직장인이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 상사의 기분을 맞춰줘야 해서, 의무적인 건배사, 무조건적인 참석 요구,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등이 단골로 꼽힌다.

 

◇ 회식은 필요…방식이 문제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식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회식의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한다. 최근 한 건설사의 사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 회식은 꼭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만 회식 주기에 대해서는 45%가 한 달에 1회를 선택했다.

한 유통기업에 다니는 김수명(가명) 대리는 "회사 공식 회식 자리에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평소 하지 못한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긴 하다"면서도 "대신 밑에 사람의 일정을 무시하고 퇴근 직전 번개를 친다거나 과한 음주로 3차, 4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술이 과하면 다툼이나 성희롱 등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지 않느냐"며 "특히 여성 입장에선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공연이나 영화 등을 함께 보거나 당구나 볼링 등 레포츠를 하는 것을 이상적인 회식으로 꼽는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내놓은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회사에 도입되길 희망하는 회식으로 문화(생활) 회식을 꼽은 응답자가 46.1%로 가장 많았다. 맛집 투어 회식(25.2%), 레포츠 회식(25.2%)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미지=아이클릭아트

 

◇ 바뀌는 회식 문화…소통의 장으로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회식 문화를 바꿔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3무(無) 데이'(회의·야근·회식이 없는 날)나 '119 회식(한 가지 술로 1차에서 9시 전에 끝내는 회식) 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회식 문화가 정착된 직장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요즘엔 팀원들이 함께 볼링을 치거나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같은 곳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는 회식이 대부분"이라며 "대부분 젊은층이 이런 회식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출간돼 직장인들의 눈길을 끌었던 '술자리도 능력이다'라는 책에서 저자 도가 히로쿠니는 "나태한 생각을 가지고 회식에 참석하는 건 아까운 일"이라며 오히려 회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메일 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겠지만, 중요한 건 밸런스"라며 "서로 예의를 잃지 않는 회식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으로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받으며 예능 판 '미생'으로 불리는 '무한상사'. 이 프로그램에서 회식 자리는 현실처럼 온갖 진상과 아부, 하극상 등이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한편으론 서로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선후배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이 조명되기도 한다.  

 
도가 히로쿠니도 이런 회식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그는 "회식에서의 대화는 95%가 시시껄렁한 잡담인데, 이런 업무와 상관없는 잡담이 오히려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서로 이해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만큼 팀워크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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