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그룹이 레미콘 업계 경쟁사인 ㈜동양 경영권 인수를 선언한지 반년이 넘었다. 당시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펼쳐졌는데 유진의 경영권 장악 의도는 좌절됐다. 하지만 시간은 유진 편이었다. 유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유주식을 늘려 어느새 30%에 육박하는 지분을 확보했다. 이제 유진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신중하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유진의 동양 인수 작업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편집자]
유진은 지난 3월 동양 경영권에 참여하기 위한 지분 매입은 물론 동양 이사회에 자사 임원을 넣기 위해 주주총회 안건으로 이사회 인원 증가 및 신임 이사 선임안 등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유진은 동양의 소액주주들로부터 일일이 위임장을 받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하지만 해당 안건은 주총을 통과하지 못해 유진의 동양 이사회 참여는 수포로 돌아갔다.
유진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지분매입 경쟁을 벌였던 파인트리자산운용과 손을 잡았고, 이 회사가 보유한 동양 지분을 넘겨받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계열사를 통해 동양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하며 목표 지분(25%)에 근접했다.
◇ 유진, 동양 지분 27.5% 보유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진기업을 포함한 유진그룹 계열사(유진투자증권·현대개발·현대산업)가 보유한 동양 주식은 총 6564만709주, 지분율은 27.5%이다. 동양이 보유한 보통주(2849만1974주)를 제외한 의결권 행사 가능 주식수(2억1019만2089주) 기준 지분율은 31%를 넘는다.
지난해부터 동양 지분매입을 시작한 유진은 올 초 동양 경영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한 때 지분매입 경쟁자였던 파인트리자산운용을 파트너로 삼고 지분 매입을 가속화했다.
동양 이사회 참여를 원했던 유진과 파인트리운용은 지난 3월 동양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신들이 제시한 안건(이사회 구성원 증가 및 신임 이사 선임안) 통과를 위해 서로 손을 잡았다. 이들은 ‘각기 보유하고 있는 전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고, 각 계약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 일정 시점에 일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Call option)를 보유한다’는 내용의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
동양 주총에서 양사가 상정한 안건은 부결됐지만 계약 내용에 따라 유진은 파인트리운용이 보유한 동양 지분 10.03%를 972억원에 매입하기로 결정, 파인트리운용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진은 동양 지분 늘리기에 나섰고 최대주주로서 지위를 다졌다.
특히 동양 최대주주가 된 유진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를 했다. 이에 따라 유진이 동양 지분 2.5%를 추가해 30%를 넘기게 되면 동양은 유진그룹 계열사가 된다. 사실상 유진이 동양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 엇갈린 양사의 경영성과
유진그룹이 동양 경영권을 노리는 이유는 주력 계열사인 유진기업이 영위하는 레미콘 사업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유진기업은 국내 레미콘 업계 1위지만 시장 점유율은 7%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사업망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며 경상 및 강원도 지역은 취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반면 동양은 유진기업이 갖추지 못한 경상과 강원지역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유진 입장에선 동양 경영권 인수를 통해 레미콘 사업 전국망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국내 신규주택시장 호황으로 착공물량이 많다는 점도 유진이 동양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다.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레미콘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호황기를 맞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어서다.
실제 유진기업은 지난해부터 실적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분기에는 영업이익 345억원을 기록하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실현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 레미콘 생산실적 역시 430만1953㎥로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았다.
반면 동양은 부진했다. 동양은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73억원에 머물며 전년 동기대비 61% 가량 급감했다. 레미콘 생산량은 153만1000㎥로 업계 5위에 그쳤다. 전방산업 호조 속에서 거둔 실적이어서 부진의 체감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동양 경영진이 전문 경영인이 아니라는 점을 부진의 이유로 꼽는다. 현재 동양은 법정관리를 맡았던 김용건 대표가 이끌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작년부터 국내 건설경기가 살아나 시멘트와 레미콘 업계도 출하량이 크게 늘고 있다”며 “그동안 오랜 부진에서 벗어나 이익을 내야 하는 시점에서 동양 경영진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