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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시바 셈법' 따라 춤추는 韓·中·美

  • 2017.03.30(목) 17:16

[日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②
美 반도체기업 유력 관측…日정부도 우회지원 가능성
SK하이닉스, 적어도 최악상황 피할듯…이유있는 여유

"일본 기업이 일본을 지킬 생각이라면 100% 경제 합리성만으로 움직여선 안된다." (고바야시 요시미츠 일본 경제동우회 대표간사)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 예비입찰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일본공업구락부 별관에선 일본의 3대 경제단체 가운데 하나인 경제동우회 정례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은 과거 미쓰비시 케미컬 홀딩스 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도시바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고바야시 요시미츠(71)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시바는 미국 기업과 제휴하고 있다. 그 수준에서 (기술유출을) 막는 게 낫다"고 말했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경쟁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고바야시의 발언은 다른 어느때보다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물론 도시바 내부 정서를 대변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쓰나가와 사토시(62) 도시바 사장은 지난 14일 "반도체는 국가의 안전과도 관련된 만큼 그것을 의식해 상대방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전이 경제논리를 뛰어넘어 국제적 역학관계에 따라 흘러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도시바 인수전에 '외환 및 외국무역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도시바를 인수할 때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지를 따져 인수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日 "반도체는 국익, 경제논리만으론 안돼"

 

현재 도시바 인수전에는 한국 SK하이닉스,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중국 칭화유니그룹, 대만 훙하이그룹·TSMC 등 10여곳이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럴 경우 가장 먼저 도시바의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대상은 중국과 대만 기업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일 동맹을 축으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으로선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 경제적·군사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달 중순 "도시바의 기술은 샤프와 비교할 수 없다. 일본의 재산이다. 어떻게든 일본에 남기자"고 주장했다.

 

중화권 기업들이 배제되면 미국과 한국기업 등이 남는다.

 

◇ 전략적 선택으로 기우는 도시바 매각

현재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곳은 도시바와 공동으로 일본 요카이치에서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하는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15.5%를 점하고 있는 이 회사가 도시바 반도체 사업을 거머쥐면 단숨에 삼성전자(35.4%)에 맞먹는 수준으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재무여력이 크지 않은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웨스턴디지털의 현금창출력(EBITDA)은 하이닉스의 절반에도 못비친다.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의 기업가치를 2조엔(약 20조원) 이상으로 보고 있음을 감안하면 섣불리 삼켰다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웨스턴디지털 유력설'이 쉽게 가라앉을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일본 정부가 미국 기업에 간접적으로 실탄을 대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산하의) 정책투자은행과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는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향후 안전 보장 파트너인 미국 기업과 공동 출자를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장에 직접 개입한다는 비난여론을 피하는 동시에 기술유출 우려를 잠재우려고 일본 정부가 우회경로를 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웨스팅하우스(도시바의 원전 자회사)의 파산신청으로 앞으로 도시바가 미국 정부와 법원, 금융기관, 전력회사 등과 힘겨운 협상을 벌여야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도시바가 결국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美기업으로 옮겨가는 균형추


도시바 인수전이 중화권이 아닌 미국 기업으로 무게중심이 기운다면 SK하이닉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하게 된다.

SK하이닉스에 가장 부담스러운 상황은 신규 경쟁자의 진입이다. 과거 디스플레이시장에서 중화권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패널가격이 급락해 국내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반도체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이 도시바를 인수하는 것과 칭화유니, 훙하이가 새롭게 진입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일본계 업체나 웨스턴디지털과 같은 미국의 동종 업체가 인수하는 것이 SK하이닉스 영업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유있는 SK하이닉스의 침묵 


SK하이닉스는 예비입찰 참여 여부를 함구하고 있다. 입찰조건으로 비밀유지를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표면적 이유도 있지만 진행상황을 보며 행동반경을 결정하려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인수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려 경쟁사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마땅한 인수후보가 드러나지 않을 경우 승부수를 던져 도시바를 품에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일본 재무적 투자자들과 함께 입찰에 뛰어든 것도 인수대금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불펜에서 몸을 풀며 대기하는 구원투수로서 언제든 마운드에 오를 준비가 돼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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