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CES2020-비전과 기술의 간극 메우기 과정'이었죠.
주제는 어렵게 들리지만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규모 국제 가전·IT 전시회 CES를 다녀온 '후기' 정도로 보면 됩니다.
매년 CES에 참석하고 있는 고 센터장은 이번 CES에서 "큰 감동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큰 그림은 나온지 오래 됐는데 실현된 게 아직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아직 기술이 비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의 얘기들은 흥미진진했는데요. 그 중에 한국 기업에 대한 얘기를 요약해 전해드릴까 합니다.
우선 SK입니다.
고 센터장은 "SK가 호시탐탐 모빌리티를 노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모빌리티(Mobility)는 '이동서비스' 정도로 번역하면 되는데요. 교통수단에 IT 기술이 접목됐다고 보면 됩니다.
이번 CES에서 SK그룹은 미래 전기차인 'SK 인사이드'를 선보였습니다. 이 차에는 SK그룹 전사의 최신 기술이 탑재됐죠. SK하이닉스의 반도체, SK텔레콤의 통신, SKC의 차량 경량화에 활용되는 특수소재 등입니다.
고 센터장은 'SK 인사이드'를 보고 난 뒤 "SK가 인사이드를 통해 차 하드웨어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미래 자동차 내부를 뜯어보면 다 우리의 기술과 부품이라는 것을 SK가 과시한 셈입니다.
현재 SK그룹의 투자 현황을 봐도 모빌리티 서비스에 관심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SK네트웍스는 2018년 AJ렌터카를 약 3000억원에 인수하고 SK렌터카와 통합했습니다. SK는 카쉐어링 업체 쏘카 지분 23.87%도 보유하고 있죠.
지난해 SK와 카카오의 지분 맞교환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이 카카오 지분 2.5%를, 카카오가 SK텔레콤 지분 1.6%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는 통신, 커머스, 디지털콘텐츠, ICT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올초엔 카카오모빌리티와 SK가스가 업무협약을 맺었죠. SK가스가 운영하는 LPG충전소에 '카카오T' 서비스를 접목하기 위해서죠.
고 센터장은 "SK는 모빌리티에 대한 꿈이 크다"며 "그런데 이번 CES에서 하드웨어까지 얘기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은 현대차입니다.
현대차는 이번 CES에서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을 선보였습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하늘을 나는 차를 만들겠다는 얘기입니다.
고 센터장은 "현대차가 UAM에 뛰어든 것이 엉뚱한 소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이미 글로벌 자동차 회사는 하늘을 나는 차 개발에 착수한 상황입니다.
2017년 벤츠를 만드는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는 하늘을 나는 '에어 택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볼로콥터(Volocopter)에, 일본 도요타는 스카이드라이브(Skydrive)에 각각 투자했습니다. 도요타는 올해 도쿄올림픽에 스카이드라이브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아우디는 에어버스와 합작으로 '플라잉 택시'인 '팝 업 넥스트'(Pop Up Next)를 개발하고 있죠.
오히려 현대차가 한발 늦게 UAM 시장에 뛰어든 셈입니다.
당장 현대차와 도요타는 '개인용 비행체(PAV: personal air vehicle)'를 두고 경쟁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 현대차가 우버와 손잡고 CES에서 선보인 PAV(개인용 비행체) 콘셉트 'S-A1'을 선보였죠. CES 직후 도요타는 에어택시를 개발중인 미국 스타트업 조비에비에이션에 3억9400만달러(약 457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고 센터장은 "우버에 누가 PAV를 납품할 것인지를 두고 현대차와 도요타가 싸울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세계 1위 드론 생산국가인 중국은 위협적입니다. 중국 드론업체 이항(Ehang·億航智能)은 이미 드론에 승객을 태우고 시험 비행에 성공한 상황입니다. 이항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도 준비 중이죠. 언젠가 중국이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고 센터장은 "현대차가 UAM을 하고 싶어서 할 것 같아요?"라고 자문한 뒤 "안하면 죽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100년 전통의 자동차 회사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이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호시탐탐 모빌리티를 노리는 SK그룹과 죽기 살기로 모빌리티에 뛰어든 현대차가 출발선에 서 있는 셈입니다. 누가 모빌리티라는 결승선에 먼저 들어갈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