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왜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8000억원을 넣었을까.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빅딜'에서 풀리지 않은 의문점 중 하나는 돈의 흐름이다. 이번 인수구조를 보면 산은은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하고, 한진칼은 이 투자금으로 대한항공 유상증자 대금으로 활용하게 된다. 산은이 댄 8000억원이 '한진칼-대한항공'을 거쳐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으로 쓰이는 것이다.
복잡한 다단계 구조가 아닌 간단한 방식도 있었다. 산은이 직접 대한항공에 8000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산은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진칼에 관여한다는 잡음없이 인수 구조를 짤 수 있었다. 왜 산은은 간단한 방식을 두고 복잡한 구조를 선택했을까.
지난 16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을 통해 8000억원을 지원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한항공의 입장에선 자본시장에서 통합 시너지를 기반으로 한진칼이 참여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아울러 한진칼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주사 지분요건에 미달하게 되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시에는 지분율이 더 하락하게 되는 점도 감안했다."
이 설명을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산은이 직접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투자하게 되면 자금 사정이 빠듯한 한진칼은 증자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현재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 29.27%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경우 지분율이 2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지주회사는 상장한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는 법을 한진칼이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한진칼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여력도 없을뿐더러 무리해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대한항공마저 잃어버릴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묘수는 여기에서 나온다. 산은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한진칼은 산은에서 투자받은 8000억원을 그대로 대한항공 증자에 투자할 수 있고, 이 돈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종잣돈으로 쓰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재 한진칼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호지분은 41.8%로, 사모펀드 KCGI·반도개발·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 주주연합' 지분(45.2%)에 밀리고 있다. 치열한 지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주주 산은이 등장한 것이다.
한진칼이 산은의 자금을 지원받는 방식은 '3자 배정' 유상증자다. 대상을 특정해 증자 하다보니, 다른 주주의 지분은 희석된다. 한진칼의 증자가 마무리되면 3자연합과 조원태 회장 측 우호 지분은 각각 40.5%, 35.3%로 줄어들게 된다. 반면 산은은 10%대를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산은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게 되면 경영권 분쟁은 끝나게 되는 셈이다.
산은은 일방적으로 조 회장을 편드는 일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최대현 부행장은 "산은은 경영평가위원회를 통해 경영성과를 매년 평가해 평가등급이 저조할 경우 해임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일방에만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산은이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 보트를 쥐겠다는 의지가 확연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특이점 2가지는 ①산은의 (한진칼) 신주 상장 예정일이 12월 22일로, 내년 주주총회에서 산은이 한진칼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②산은은 한진칼의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회위원 등 선임 권리를 가져갔다는 점이다. 경영권 분쟁 잡음에 노출되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신주 상장 예정일을 내년 이후로 미루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이 질문대로 산은이 한진칼 신주 상장을 내년으로 미루면 어떻게 될까. 산은은 이번에 취득한 지분 10%에 대한 의결권을 내년에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내년 주총에서 조원태 회장 측과 3자 주주연합의 치열한 표 대결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산은이 받는 한진칼 신주가 연내에 상장되면서 내년 주총에서 표 대결은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3자연대 측의 반발은 이래서 나온다. KCGI는 "한진그룹과 산은이 발표한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국민 혈세를 활용한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그 숨겨진 본질"이라며 "자금조달금액(8000억원)은 한진그룹이 보유한 빌딩 1~2개만 매각하거나 기존 주주의 증자로도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