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르노코리아 지분 일부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고, 지리는 볼보·폴스타를 통해서도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죠. 게다가 국내 수입차 1위인 메르세데스 벤츠(다임러)의 최대주주는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입니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다양한 사업자들이 힘을 모아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혀 다른 해석도 나옵니다. 부정적 시선으로만 볼 게 아니라, 중국 자본과의 접점이 확대되는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시장서 영향력 키우는 중국 자본
이달 초 중국 민영 완성차 지리그룹이 르노코리아자동차 지분 34%를 확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리그룹 산하 '지리 오토모빌 홀딩스'가 르노코리아차가 발행한 신주를 인수해 지분 34.02%를 보유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르노그룹은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지만, 지리는 2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지리는 스웨덴 자동차 회사로 유명한 볼보도 갖고 있습니다. 볼보의 국내 위상은 상당합니다. 볼보의 올해 1~4월 국내 누적 판매량은 약 4692대로 수입차 가운데 4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입차 '양강'인 벤츠(2만5964대), BMW(2만4701대)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하지만, 아우디(4702대)를 바짝 추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더욱이 폭스바겐(4221대)이나 포르쉐(3323대), 토요타(1757대)와 같은 곳도 앞지르고 있죠.
지리는 볼보와 합작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도 출범시켜 국내에 신차를 내놓고 있습니다. 폴스타는 지난해 12월 국내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는데요. 지난 4개월 동안 729대를 팔았고, 수입차 가운데 점유율은 0.86%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자본의 영향력 범위에는 독일 벤츠도 포함됩니다. 지난해 말 베이징자동차의 다임러(벤츠 모회사) 지분이 9.98%에 달해 최대주주라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화제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게다가 지리차의 창업주 리슈푸 회장도 투자사(Tenaciou3 Prospect)를 통해 다임러 지분을 9.69% 갖고 있어 2대 주주 위치에 있습니다. 벤츠에 투입된 중국 자본이 20%에 달하는 셈입니다.
우려와 기대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중국 자본의 힘을 받은 각각의 자동차 회사들이 국내 시장을 점점 더 잠식해나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중국 자본으로 엮인 기업들끼리 연합해 시장 공략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실제로 르노코리아와 지리의 경우 한국시장 공략을 위해 하이브리드 신차 등 합작 모델을 연구·개발한 뒤 오는 2024년 선보일 계획입니다. 여기엔 볼보도 가세해 자사 기술을 제공할 방침입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작년 기준 74%에 달하는 현대차·기아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만 쌍용차와 한국GM 등은 치열한 경쟁 국면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수입차들의 국내 공략도 거세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력이 힘을 모아 득세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셈이니까요.
과거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 별다른 투자 없이 '기술 먹튀'했다는 논란이 있었기에, '중국'이란 이유만으로 불편한 감정도 감지됩니다. 국내 시장에서 특별한 투자 없이 단물만 취할 것이란 걱정이죠.
반대의 해석도 있습니다. 중국 자본의 침투를 위기로만 볼 사안은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활발하게 국내에서 사업을 벌이는 상황을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외교적·정치적 역량도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일개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연결고리를 찾고 또 찾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필요하면 적극적인 협력 관계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벤츠만 하더라도 중국 자본과의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이 묻었다고 무시하거나 자국 시장 진출을 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벤츠 차량은 작년에 전세계에서 275만대 판매됐는데, 가장 많이 팔린 곳은 중국입니다.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달합니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 대륙 판매 비중이 23%, 미국은 13%인 점을 보면, 중국은 결코 포기해선 안 되는 시장입니다.
때마침 중국 정부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지분 비율 규제를 없애고 있습니다. 자국 자동차 기업들이 자생력을 완전히 갖췄다고 판단하고, 대문을 열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작년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자국 브랜드가 46.9%에 달하고 독일(19%), 일본(18.5%), 미국(11.4%), 한국(2.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야를 자동차 시장에 국한하지 않으면 국내 산업 전반에 긍정적 영향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볼보가 국내 선보인 첫 순수 전기차 'C40 리차지'엔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텔레콤의 손길이 묻어 있는데요. 삼성이 인수한 하만 카돈의 사운드 시스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SK텔레콤의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티맵'이 탑재됐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 먹튀 사례가 있어 중국 자본에 대해서는 더욱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면서도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를 발표할 때 현지에서 반대의 목소리보다는 투자유치·협력확대 차원에서 환영하는 반응 일색이었던 점을 고려해 외국자본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