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가 4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주력인 2차전지·반도체 소재와 화학 사업이 모두 전방 수요 둔화로 부진했기 때문이다. SKC는 기존 사업 중 수익성이 낮은 사업 지분은 과감하게 매각하고, 신사업에 적극 투자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수요부진' 앞에 장사없다
SKC는 올 3분기 매출 5506억원, 영업손실 447억원을 거뒀다고 31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2.8%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이 기간 당기순손실은 654억원으로 전년 동기 99억원 대비 증가했다.
이는 증권가 컨센서스(전망치)를 밑도는 수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SKC가 3분기 매출 6343억원, 영업손실 18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SKC의 적자 폭은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4분기 2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한 이후 4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SKC의 3대 사업축인 2차전지와 반도체 소재, 화학 사업이 모두 전방 시장 불황으로 수익성이 하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업부문별로 살펴보면 SK넥실리스의 동박 사업을 중심으로 한 2차전지부문이 영업손실 130억원을 거두며 작년 3분기 대비 적자전환했다. SK넥실리스는 실적 둔화의 원인으로 3분기 유럽 수요 부진으로 동박 수요가 감소했고, 전력 단가가 인상되며 원가가 상승한 것이 실적 하락한 점을 꼽았다.
실적부진은 4분기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와 전기차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SKC의 동박 판매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동박 재고가 쌓여 있다는 점도 실적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이재홍 SK넥실리스 대표는 31일 진행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수요가 부진하다 보니 판매량이 줄어 생산량은 감소했지만, 전력 단가 등 원가는 높아졌다"며 "이런 상황은 4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연말에 일부 재고 영향도 있을 수 있어 저희(SK넥실리스)에 안좋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SK넥실리스는 4분기부터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고, 국내 정읍 공장의 전력비 절감 기술이 적용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 실적은 4분기부터 반영될 예정이다.
최두환 SK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0월부터 말레이시아 공장의 선적이 시작됐고, 글로벌 4개 업체와 중장비 공급 계약을 이뤘다"며 "말레이시아 공장의 북미향 판매가 시작되고, 추가적인 중장기 공급 계약도 준비하고 있어 매출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소재 사업 역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반도체 소재 사업은 3분기 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50.7% 감소했다.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이 지속된 데다 SK엔펄스가 기존 사업을 매각하면서 사업 규모가 대폭 축소된 영향이다.
김종우 SK엔펄스 대표는 "SKC 반도체 사업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 '빼기'경영을 하면서 규모가 더욱 축소됐다"며 "내년부터는 '더하기'경영으로 본격 전환하고 CMP 패드와 블랭크 마스크 매출 개선과 최근 인수한 ISC 성장을 통해 실적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화학 사업 역시 석유화학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실적이 악화했다. SKC의 화학 사업 부문은 올해 3분기 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했다.
임의준 SK피아이씨글로벌 대표는 "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상당히 장기화되고 있다"며 "이제 저점을 통과하고 있지 않나 전망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점진적으로 중국 시장 수요가 회복되지 않겠는가 하는 예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판짜기' 마무리 단계…실적개선 나선다
SKC는 실적 개선을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은 매각하고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새판을 짜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화학-반도체 소재-2차전지 소재(동박)'로 이어지던 사업구조를 '친환경 소재-반도체 소재-2차전지 소재(실리콘 음극재·동박)'으로 바꿀 계획이다.
우선 2차전지 소재 사업은 생산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4분기부터 연산 10만2000톤 규모의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이 가동을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내년부터는 폴란드 스탈로바볼라에 위치한 연산 16만6000톤 규모 공장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실리콘 음극재 사업도 추진한다. SKC는 지난 2021년 영국 실리콘음극재 업체인 넥시온에 총 8000만달러(약 1017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지난 7월 실리콘 음극재 자회사 '얼티머스'를 설립했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10배 이상 높아 배터리 충전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티머스는 연내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실리콘 음극재 생산 준비에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반도체 소재 사업 투자도 활발하다. SKC는 지난달 반도체 테스트 솔루션 기업인 'ISC'의 자회사 편입을 마무리했다.
특히 SK앱솔릭스을 중심으로 반도체 글라스 기판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SKC는 미국 조지아주에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2억4000만달러(약 3243억원)를 투자해 연산 1만2000㎡ 규모(반도체 기판 기준)의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SK앱솔릭스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글라스기판용 장비들이 미국 공장에 설치되고 있다.
SK앱솔릭스는 글라스(유리)로 반도체 기판을 만들어 세계 최초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글라스 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더 넓고 얇게 만들 수 있는 데다, 내구성도 좋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앱솔릭스는 구미 공장에서 파일럿 라인을 가동 중이다.
오준록 SK앱솔릭스 대표는 "미국 글라스기판 공장에 공업용수,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연말까지 장비가 모두 들어오면 내년 1월부터 시생산을 위한 허가를 받을 것"이라며 "허가만 받는다면 바로 시생산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SKC는 지난 9월 미국 반도체 패키징 업체 '칩플렛'에 투자하고 지분 12%를 확보했다. SKC의 글라스 기판 생산 역량에 더해 칩플렛의 설계·아키텍처 기술, 고객사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SK앱솔릭스와 차별적인 '반도체 패키징 솔루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SKC는 친환경 소재 사업 부문 매출도 오는 2027년 1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미국의 스마트 윈도우 기술 업체 미국 '할리오(Halio)'에 최대 7000만달러(약 950억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스마트 윈도우는 전기를 이용해 유리를 변색시키고 태양광 및 태양열 투과율을 조절하는 기술로, 냉방 효율을 높여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신사업 투자금은 기존 사업 중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해 확보한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SKC는 지난 2020년 코오롱인더스트리와의 합작사인 SKC코오롱PI 지분을 3035억원에 매각했다. 같은 해 화학 사업 지분 매각을 통해 총 4억6460만달러(약 5650억원)를 확보했다. 지난해에도 SKC는 한앤컴퍼니에 필름 사업부를 1조6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달 들어선 △폴리우레탄 원료 사업 핵심 투자사 SK피유코어 지분(4103억원) △SK엔펄스 파인세라믹사업부(3600억원)를 매각했다. 여기에 더해 SK엔펄스의 중국 세정 사업을 878억원에 매각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SKC에 따르면 지분 판매에 따른 현금 유입은 1조원에 달한다.
최 CFO는 "최근 비주력 사업을 대거 매각하면서 전반적인 사업 정리가 완료됐다"며 "경영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에도 실적 개선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